[ET칼럼] 계(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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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제19대 총선을 97일 앞두고 말(馬) 타고 나선 이가 많다. 예비후보 사무실 개소식이나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잦은 이유다. 현역 의정 활동을 알리는 이메일도 많아졌다. 이달 12일부터 유권자에게 의정 활동 보고를 할 수 없다. 입후보제한직에 있는 공무원과 언론인 등은 사직해야 한다. 유무선 통신 선거운동이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

 슬슬 구미가 당긴다. 선거만큼 극적이고 사연 많은 드라마가 없다. 일면식이라도 있는 이가 출마한다는 선거구에 관심이 더 쏠린다. 정치적 선호와 상관없다. 그들이 4년 전 18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지역구로 일제히 권토중래하기에 흥미로울 뿐이다. 그때 그들은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으되 공교롭게도 ‘친박’ 계열 무소속 후보에게 패한 터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정인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보통신정책위원회 부의장이 강원 동해·삼척에 다시 나섰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최연희 의원에게 패한 뒤 동해시에 미래발전전략개발원을 열어 와신상담했다. 옛 동해삼척(한나라)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아 최 의원의 복당을 막아내기도 했다. 그가 이이재 현 동해삼척당원협의회 위원장 등과 경쟁해 당 공천을 받을 수 있을까. 4선인 최 의원과의 재대결은 그 다음에야 가능하다.

 석호익 한국지능통신기업협회장도 재도전한다. 제21회 행정고등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4년 전 당 공천을 받아 경북 고령·성주·칠곡에 나섰다가 이인기 의원에게 졌다. 이 의원은 이곳에서 내리 3선하는 등 기반이 단단하다. 석 예비후보에게는 녹록지 않은 승부다. 두 사람 모두 공천이 선결 과제일 터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지하수가 차올라 올해 ‘고령 그린수박’ 농사를 망칠까 걱정하는 유권자 마음을 어찌 살지는 그 다음 문제겠다.

 박형준 옛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도 부산 수영에 재출마했다. 2008년 4·9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상대가) 구청장, 시의원을 오래 하면서 지역 기반을 잘 다져 놓아 쉽지 않다”고 걱정한 후 쓴 잔을 들었던 그다. 상대는 부산 수영구 현역인 유재중 의원이다. 부산 ‘연제의 딸’이라는 김희정 옛 한국인터넷진흥원장도 예비후보 사무실을 지하철 연산역 부근에 열었다. 그도 1995년부터 11년간 제1·2·3대 연제구청장을 한 뒤 18대 국회에 진출한 친박 계열 박대해 의원과 맞서야 한다.

 점점 재미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 쇄신’을 천명해서다. 기득권을 먼저 놓겠다고 했다. 어쩌면 4년 전처럼 ‘무소속 친박 계열’이 쏟아질 수도 있겠다. ‘계(系)’가 시험에 든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이재오 계열이나 야권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정치판에서 ‘계’는 기득권을 지키는 데 쓰였다. 유권자는 지금 ‘계’를 깨는 정치를 원한다.


 이은용 논설위원 ey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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