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특별인터뷰-김필립 미 컬럼비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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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과학계가 눈앞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지요. 2012년은 그런 면에서 위기이면서 도전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꿈의 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의 물리적 특성을 규명한 재미 과학자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 그래핀의 빠른 발전 속도와 함께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 후보에 올랐던 인물로, 세계에서는 뛰어난 한국인 과학자로 각인돼 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몇 년은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 시기다. 그동안 나노 기술은 눈으로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해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 수확철이 다가오고 있다고 그는 평가한다. 과학계도 이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왔다.

 그는 “그래핀은 상용화로 가기 위한 기술적 난관이 아직 있지만, 몇 년간 발전을 투사해 봤을 때 충분히 여러 장애물을 넘어설 만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 그래핀뿐만 아니라 저차원 물질로 발을 넓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R&D 방향을 응용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기초 연구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국내 대학과도 몇 가지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한 12월에도 그는 무리한 일정 소화로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보여주는 데에만 집착해서는 큰 시장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수준이 낮은 애플리케이션 분야에 집중하면 시장의 반응은 미약할 뿐이다. 한국이 ‘도전 해 볼만한 위치’임은 분명하다.

 한국의 과학 교육에 대해서는 ‘토론문화’를 강조했다. 토론하는 문화, 협업하는 문화가 창의력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일순간에 떠오른 영감을 하나의 과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름과 현 지위를 놓고 보면 교포가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김 교수는 서울에서 나고 석사까지 한국에서 마친 국내파다. 이름도 할아버지가 손수 시켜주신 이름이다. 필립(必立). 할아버지의 뜻대로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로 우뚝 섰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한국 실정을 모르는 외인의 것이 아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왜 많은 과학자들이 그래핀에 열광하는가.

 ▲기초과학자들까지 열광하는 이유는 응용분야가 넓어서다. 그동안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은 물질 가운데 탄소로 이뤄진 것은 여럿이 있었다. 플러린, 나노튜브, 그라파이트(흑연) 등이 대표적이다. 그라파이트는 오래된 물질이다. 연필심뿐 아니라 전지나 용광로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전기적 성질을 지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1950·60년대에는 좀 더 다른 물질이 관심을 받았다. 탄소섬유와 플러린이 그것이다. 플러린 이후에는 탄소나노튜브가 발견됐다. 탄소나노튜브는 발견된지 20년동안 나노 사이언스를 이끄는 물질이 됐다. 일정부분은 실용성에 가까이 갔다.

 그래핀 연구는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핀은 초기 단계부터 기초에서 응용으로 넘어갔다. 논문의 성장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2010년에는 하루에 7~8편의 논문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오히려 거꾸로 기초연구 지원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핀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나.

 ▲가장 재밌는 것은 전기적 성질이다. 대부분의 빛이 그래핀을 투과하면서도 굉장히 좋은 도체성질을 띈다. 또 질기다. 25%까지 늘려도 제자리로 돌아온다. 4000~5000도에서도 그래핀은 녹아내리지 않는다.

 단지 이런 좋은 물질적 성능이 아니라, 그래핀을 만들어 내는 방법도 중요하다. 가임교수와 노보셀로프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방식은 스카치테이프로 한 장씩 떼어내는 것이었는데 이는 연구소에서 응용할 수 있는 정도다. 상용화에는 미흡하다. 지난 3~4년 동안 여러가지 방법이 개발됐다. 이제는 1m 수준의 대면적까지 나왔다. 좀 더 싸게 많은 양을 합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계속 개발 되고 있다.

 -그래핀의 응용성에 대한 평가가 높다. 어떤 분야 응용이 가능한가.

 ▲그래핀을 이용한 잉크나 페인트가 가장 먼저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저차원 응용이지만 그래핀의 아주 우수한 성질을 응용한 것이다. 빛의 투과성을 이용해 그래핀 옵토일렉트로닉 디바이스를 생각할 수 있다. 빛을 전기적으로 바꿔낼 수 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플렉시블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핀을 이용한 양극재로 에너지 소자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 다만 전자부품 분야에서는 여러가지 이견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실리콘 대신 그래핀을 쓸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반도체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간 띠 간격(Band Gap)이 있어야 한는데, 그래핀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하는 연구는 어떤 것인가.

 ▲기초적인 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다. 저차원 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저차원 물질은 2차원 물질인 그래핀을 포함해 1차원, 0차원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1차원은 나노튜브가 될 수 있다. 0차원 양자점까지 전기가 어떻게 흐르는지에 관심이 많다. 2004년 무렵에는 그래핀이 발견되기 전이니까 흑연 층을 떼어내는 데 집중했는데 지금은 다른 종류의 저차원 물질을 찾고 있다. 연구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한국 연구진과도 공동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한다. 성균관대 연구진들과는 그래핀 소자를, 홍병희 서울대 교수와는 대면적 그래핀을, 연세대와는 열전 소재 등을 공동 연구 중이다.

 -미국의 연구 환경을 평가한다면.

 ▲미국은 기초과학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연구 지원 자체도 굉장히 활발하다. 정부가 바뀌면서 전체적인 연구 규모는 작아졌다 커졌다를 되풀이하기도 하지만 기초과학에 상당한 관심을 쏟는다는 점은 변함없다.

 예산이 작아졌다고 해도 연구 분배와 평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예산을 책정하고 집행하는 펀드매니저에는 전직과학자나 전직교수가 포진해 있다. 70세 이상 되신 분도 많다. 한 분야에서 30~40년 동안 연구해온 안목이 반영되는 것이다. 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조화를 이뤄내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래핀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위상이 높다. 응용 연구가 많이 앞서 있다. 세계적으로 그래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해외에서도 과제를 기획할 때 한국에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래핀 기초에 대해서는 인력풀이 적다. 응용이 뜬다고 기초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노벨상이 그래핀에서 다시 나올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핀과 관련된 새로운 물리적 현상을 찾아낸다면 안 될 것도 없다.

 -가임과 노보셀로프 교수는 스카치테이프로 그래핀을 떼어내 노벨상을 받았다. 독특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육에서는 창의력을 키우는 게 약해 노벨상 수상 기회가 작다고도 한다.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정말 좋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토론하는 능력, 설득하는 능력, 질문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영감은 갑자기 떠오를 수 있지만 줄기를 잡아가고 아이디어 차원으로 정리를 해 가는 과정은 대부분 토론에서 나온다. 협업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과학에서는 물론이고 교육과정에서 토론문화가 강조되지 않았다.

 과학자가 정말 중요한 것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수식이 아닌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나도 가장 큰 고민이 이것이다. 동료는 물론이고 과학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힘들다. 쓰기나 말하기도 배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능력인 것 같다. 어떻게 질문하는지에에 따라 답의 질도 달라진다.

 -한국의 이공계 기피는 이제 더이상 갑작스러운 현상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은 이공계 기피로 산업 전반이 흔들릴 위기다.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오래된 문제라서 ‘기피’라는 말 자체도 이상할 정도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사이언스나 엔지니어링 전공보다는 의대나 로스쿨 진학을 원한다.

 그 중에서도 기초과학은 지원자 숫자가 더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아직도 좋은 학생들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숫자는 부족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우수하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을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우수한 학생들이 과학을 하러 오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동기부여다. 소수일지라도 우수한 학생들이 스스로 과학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분명한 것은 과학은 그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물론 연구에 상당수 인원이 필요하다. 미국은 해외에서 유학 온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미국은 세계 과학을 선도하는 면이 있어 재원을 끌어올 여력이 된다. 한국은 그런 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약력>

  ◆1968년 서울 출생

  ◆1990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1992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석사

  ◆1999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응용물리학 박사

  ◆1999년~2001년 미국 UC버클리대학교 물리학과 박사후과정 연구원

  ◆2001년~ 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2008년 제18회 호암상 과학상 수상

  ◆2011년 제6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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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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