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가전 1등급 '의혹' … "韓 시험 우회"정황

중국 가전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에너지효율등급을 실제 성능보다 높게 표기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정 조건에서만 기준을 충족하도록 설계해 한국의 시험 제도를 '우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자국 기업의 에너지 효율을 믿을 수 없다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엔 '시험 우회'를 막을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사후관리나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세탁기·냉장고 등 일부 중국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 등급 기준 우회 정황이 의심된다며 한국에너지공단에 사후관리 제도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실제 국내 가전 제조사가 일부 중국산 제품의 에너지효율을 자체 시험한 결과, 온도·습도·부하 등 특정 시험 조건을 감지해 에너지 사용량을 낮추는 방식으로 표시 등급을 맞췄다고 의심되는 사례가 다수 파악됐다.

현행 에너지효율등급제도는 정해진 시험 조건에서 측정 값만 충족하면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국내 가전업계는 중국 기업이 이같은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시험 조건이 감지되는 순간 일반 사용 상태와 다른 로직으로 전환해 대응하는 우회 설계를 적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의혹은 지난해 에너지효율 1등급을 획득한 중국 가전제품이 급증하면서 불거졌다. 특히 마이디어와 TCL은 각각 에너지효율 1등급 냉장고 4개, 6개를 지난해 처음으로 등록했다. 이전까지 1등급 제품은 단 1개도 없었다. 세탁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신규 등록된 1등급 마이디어와 TCL 세탁기만 각각 6개, 15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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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전의 '깜깜이' 에너지효율 등급 산정은 자국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설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지난달 제조사의 테스트 모드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우회 모드 방지 검사 시험'을 강제 시험 항목으로 도입했다. 우회 모드로 시험을 수행한 것이 발견될 경우 해당 시험 결과를 무효로 판정하도록 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 일부는 일반 사용 환경에서는 표시 등급 수준의 효율이 나오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정해진 시험 조건에서만 에너지 사용량을 낮추는 방식이라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지만, 현행 제도만으로는 이를 적발하거나 제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이같은 의도적 우회 설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부재하다. 유럽은 시험 중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그에 맞춰 성능이 변경되는 제품을 우회 제품으로 규정한다. 국제전기위원회(IEC)도 품목별로 구체적인 '시험 우회'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는 관련 제도가 없다.

사후관리 역시 부실하다. 에너지공단은 매년 유통되는 제품 가운데 일정량을 무작위로 수거해 재시험을 실시한다.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사후점검이 이뤄지는 만큼 재시험 가능성도 크지 않다. 등급 부적합 판정이 나더라도 표시사항을 정정하거나 2000만원 이하 과태료만을 부과한다. 중국 가전기업의 공격적 등급 산정이 가능한 이유다.

KEA는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 달라며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에너지공단에 제도 개선을 건의한 상태다. 가전업계는 시험 우회 방지 규정 신설을 비롯해 사후관리 모델 선정시 인정 수량 또는 비율 이상의 외산 제품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는 등의 사후관리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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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조사 국내 에너지효율 1등급 제품 출시 현황 - 자료: 한국에너지공단 효율관리제도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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