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하나만 삼키면 내 몸속 아픈 곳이 바로 고쳐진다. 상상에서 가능할 것 같은 일이지만 적어도 전자제품의 고장은 이렇게 고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자가 치료 기능을 갖춘 전자회로를 개발했다. 전자제품은 사용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부 기판의 균열 횟수도 증가한다. 연구진이 개발한 전자회로 장점은 회로에 발생하는 균열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자체적으로 복원한다는데 있다. 만약 자신이 시청하고 있는 TV 내부 회로에 균열이 발생한다면 이상이 발생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문제가 해결돼 있는 셈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내부 균열을 복원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0만분의 1초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생물도 아닌 전자회로가 어떻게 스스로 균열을 치료할까. 원리는 간단하다. 연구진은 기판에 약 0.01mm 마이크로캡슐을 일정하게 배열했다. 캡슐 내부에는 갈륨-인듐 합금이 액체 상태로 담겨있다. 회로에 균열이 발생했을 때 마이크로캡슐이 균열부위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균열을 메운다. 이론적으로 기존 전도율의 99%를 복원할 수 있다. 우리 몸에 상처가 났을 때 맹렬히 달려드는 백혈구를 상상하면 된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의 연구지만 기술 개발이 진행되면 다층 인쇄회로기판(PCB)같이 보다 복잡한 시스템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다양한 전자제품과 최근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소형전자제품 등에도 모두 자가 치료 기능을 갖춘 전자회로가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우주·항공 등 극한 환경에 사용되는 제품에 이 기술은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내부 균열을 자체적으로 복구하는 전투기, 우주공간에서도 수리 없이 영구적으로 운항하는 우주선을 이제는 만화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볼 수 있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해답은 이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실현되는지 지켜보면 알 수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