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자승자박한 ‘예산 심의 지체 정국’에 질식할 것 같다. 스스로 혼란을 불러온 터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한나라당이 원인을 제공했고, 무기력했던 민주당은 이러저러한 방안을 내놓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바람에 내년 국가 예산(안) 326조1000억원이 제자리에 섰다. 일자리 창출, 복지, 경제 활력 증대에 쓸 예산 창구가 제대로 열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 법에 정한 예산안 처리 기한이 코앞(12월 2일)인지라 더욱 조마조마하다.
한나라당은 이런 이유를 들어 어제 오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를 열어 예산심의를 하자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민주당이 참여하지 않자 그냥 접었다. 하루나 이틀 더 기다려주겠다는 모양새다. 3일째부턴 한 번 더 힘을 쓸 생각인가. 곤란하다.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자충일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속내가 더 복잡하다. 지역구 예산 성과 없이 내년 4·11 총선에서 유권자 앞에 서기 두려워서다. 민주당 한 의원은 “한나라당이 한미 FTA 날치기 처리를 사과하고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겠다고 약속해야 예산안 심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말해 바싹 탄 속을 얼마간 내보였다. ‘여당 압박에 마지못해 용인하는 그림’을 바라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유권자 긴 한숨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민주당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실망한 유권자가 어디 한둘일까.
예산 심의 지체 정국은 기성 정치권의 미래를 가를 가늠자다. 국민 앞에 진실하고 솔직하게 서지 못하면 자멸을 부를 뿐이다. 민심은 이미 안철수를 중심에 둔 제3 정당의 출현을 고대하지 않던가. 기성 정치권의 공멸이 내일로 닥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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