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마리나 고비스 ‘스몰 캐피털’
(중) 클레멘트 베졸드 ‘사이버 민주주의’
(하) 김종훈 ‘스마트 네트워크’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과 같은 사회 규범과 제도가 여전히 유효할까. 정보기술은 과연 빈곤퇴치, 문맹, 실업 등 지구촌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클레멘트 베졸드 대안미래연구소(Institute for Alternative Futures) 소장은 “정답은 없지만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베졸드 소장은 앨빈 토플러, 짐 데이터 교수와 함께 1977년 미래 예측연구소로 알려진 대안미래연구소를 설립한 세계적인 미래학자다. 앞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이버 민주주의를 제창해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베졸드 교수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회 참여 등을 언급하며 “앞으로 인터넷에서 인간관계가 보편화하며 사이버 공간 정치 참여가 차세대 시민운동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산업 구조, 표준화, 중앙 집중화 등 거대 사회가 탈중심화, 커뮤니티 기반 사회로 바뀌며 국가 단위보다도 더 좁은 세상인 ‘작은 커뮤니티’가 부상한다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단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방송통신 인프라를 구축한 사례를 높이 평가하며 미래 사회에서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스마트를 활용한 일(Work), 건강(Healthcare), 교육(Education)이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대안 미래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1977년 설립한 비영리 조직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는 게 설립 취지다. 1982년에는 영리조직인 대안미래협회를 연구소 산하에 만들어 각종 기업 컨설팅도 실시하고 있다. 연구소 활동은 성공적이다. 미래와 관련한 논의가 많이 이뤄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꾸준히 연구 성과도 내왔다.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미래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등을 예측하는 작업을 벌여 왔다.
-구체적으로 연구 활동을 소개하면.
▲첫 번째 연구는 미래 시나리오를 그리는 일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 시나리오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지 그 해답을 찾는다. 과제에 기반을 두고 미래에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를 고민한다. 세 번째는 어떤 시나리오로 가는 게 가장 인류에게 좋을지를 연구한다. 미래 로드맵 연구에는 가장 많은 연구원이 참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또 다른 연구 주제는 ‘사이버 민주주의’다. 사이버 공간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타당성을 조사 중이다.
# “미래 예측 센터가 필요하다”
-미래가 어둡다는 관측도 많다. 미래는 정말 불안한가.
▲과거에 비해 지금이 훨씬 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미 앨빈 토플러가 1977년 저서 ‘퓨처쇼크’에서 이야기했다. 미래를 여러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후 변화도 심각하고 경제 불황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와 달리 에너지가 점차 고비용 구조로 흐르고 있다. 실업률도 점점 높아졌다. 그렇다고 반드시 어둡지만은 않다. 미래가 우려스럽지만 동시에 희망은 있다. 희망을 가지는 사람도 정비례해 많아지고 있다.
-농업, 산업, 정보 혁명을 거쳐 왔다. 앞으로 40년 혁명의 키워드는.
▲지금은 정보 혁명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나이든 세대는 다르겠지만 젊은 세대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즉 ‘영생’을 꿈꿀 수 있다. 이를 위한 기술 발전이 미래를 규정짓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작게는 도시에서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보이며 일자리를 어떻게 공급하고 취업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가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기술 혁명으로 탄소 배출 감소를 줄이고 기후 변화를 막는 것도 또 다른 미래 키워드다.
-미래에서 정부 역할은.
▲까다로운 질문이다. 미래 교육, 보건 등 주요 이슈는 모든 부처가 다뤄야 하지만 이해 관계자와 주도권을 쥔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괄적으로 이야기하면 정부는 미래를 예측하는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미래예측센터’가 필요하다. 이미 싱가포르와 영국은 준비 중이다. 모든 기관이 참여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한 기관에서만 연구하면 손해다. 정부 전체, 범부처 차원에서 사고할 수 있는 인프라가 중요하다.
# “인터넷, 역기능을 줄여야 한다”
-인터넷의 미래는.
▲미래 인터넷 역할을 연구 중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속도가 빨라졌고 순기능도 많아졌다. 그와 동시에 인터넷 테러리스트도 등장했다. 상업적인 마케팅에 악의적으로 이용되는 점은 도전 과제다.
연구소에서는 1985년 정보 혁명을 예측했다. 가장 중점 질문이 정보 혁명이 인류에게 도움을 줄 것인지다. 정보혁명은 세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연결시키고 중동 민주주의를 변화시켰다. 기술 발전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반대로 정보가 흐르지 않아서 지식을 발전시키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를테면 북한 등은 충분한 정보 역량을 갖추지 못해 성장을 못하고 사회적인 긴장감이 조성됐다. 인터넷은 이렇듯 앞으로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할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청소년과 기성세대 인식 차가 크다. 이를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는.
▲인식 차는 분명히 있다. 홀로그램·3D가 나오면서 나이든 세대도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젊은 세대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기억력이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능력, 심지어는 인간관계 형성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변화는 좋은 면과 나쁜 면 양면성이 있다. 그나마 한국은 유비쿼터스 인터넷이 잘 구축해 덜 심각하다. 사회 격차는 계속해서 남아있겠지만 점차 좁혀질 것이다.
-해킹, 위키리크스 사태 등 사이버 공간에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사례를 어떻게 봐야 하나.
▲사이버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고 참여하고 또 더 많은 의견이 표출되면 부정적인 면도 당연히 나온다. 처음에 인터넷은 학문적인 목적으로 과학자가 주로 참여했다. 그러나 일반인이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범죄·스팸·사이버 사기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결국 윤리적이고 지혜를 가진 사람이 인터넷 기술을 좋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통제하고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이 축복인지 불행인지는 이를 다루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인터넷 디바이드(Internet Divide)’ 연구도 진행하나.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 흐름에서 차단된 사람은 학습 기회가 막혀 빈곤하게 될 확률이 높다. 학습 능력은 기술뿐만 아니라 부모·이웃·학교 등에 좌우된다. 미국 사례를 볼 때 지금까지는 썩 성공적이지 못했다. 제조업으로 치면 부도가 나도 한참 전에 났다. 워싱턴 인근의 알렉산드리아 고등학교를 보더라도 돈 많은 학생이 좋은 학교에 가고 가난한 학생은 졸업도 힘들다.
이를 인터넷과 신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은 삶을 더 낫게 만든다. 온라인 게임만 보더라도 한국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곳은 게임 중독 현상이 심하다. 대략 1년에 1만시간을 게임에 허비한다. 학교에 100% 출석했을 때 수업받는 시간과 맞먹는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인터넷으로 빈곤을 퇴치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은 것이다.
# “새로운 작은 커뮤니티 사회를 대비하자.”
-미래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변할까.
▲연구소에서는 기업, 정부와 많은 부분을 같이 연구한다. 아쉬운 점은 교육 배경과 전문 지식이 다른 사람을 하나로 통합했을 때 그 총합이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각각의 개인 역량 총합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학연구소가 있을 때 화학자·생물학자 등이 있고 교육 배경과 언어가 다른 수많은 인재가 있었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교육도 다양한 지식과 사고를 가진 사람을 하나의 팀으로 합했을 때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미래에는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변화를 읽어야 한다. 보다 작은 커뮤니티 단위에서 고민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제조, 생산이 아니라 작은 커뮤니티로 더욱 분화해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기존 대규모 산업, 표준화, 중앙 집중화와 같은 구조로는 해결책이 안 나온다. 탈중심화, 커뮤니티 기반 사회가 올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기존 일자리는 없어지지만 대신에 창의적인 일자리가 이를 대체한다.
커뮤니티 단위의 기술, 가령 3D 프린팅, 프린팅을 통한 제조 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농작물 재배도 큰 규모 농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농작물을 산출하는 게 아니라 이웃에서 키운 것을 먹는 커뮤니티 기반 사회가 될 것이다. 포드가 만든 대량 자동차 시대가 커뮤니티 수준에서 가능해진다. 언론도 커뮤니티 단위가 기본으로 자리 잡는다. ‘스몰 커뮤니티’ 사회에는 이웃이 재배한 작물을 받고 내가 가진 세금 관련 지식을 주는 등 금전이 아니라 인적 자원 자체가 오간다.
-우리나라는 이데올로기, 남북 갈등 문제가 심각하다. 조언을 한다면.
▲한국은 기술·정보통신·인터넷에서 경이로운 발전을 이뤘지만 미국만큼 에너지 부문에서는 독립적이지 않다. 해외 의존도가 크다. 남북한 문제는 당면한 최대 과제다. 앞으로 동서독과 비슷한 행로를 걷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춘 서독과 같은 남한과 그렇지 않은 북한과 닮은꼴이다. 서독처럼 한국이 경제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에 북한을 포용하는 게 맞다.
워싱턴DC(미국)=
◇클레멘트 베졸드 대안미래연구소장은.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 주립대 로스쿨 부학장, 부르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을 거쳐 대안미래연구소를 창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1977년 설립한 대안미래연구소는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 등과 함께 현명하고 바른 미래 선택을 돕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했다.
1992년 ‘건강한 세계, 건강한 사람’이라는 슬로건으로 벨몬트 비전을 선언해 관심을 끌었다. 베졸드 소장은 2009년 록펠러 재단 후원으로 빈곤 퇴치를 위한 ‘스마트 세계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미래 석학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주요 저서인 비전 2020-건강관리 정보와 기술 및 표준, 미래지향적 민주주의, 노동과 보건의 미래 등으로 헬스케어와 빈곤 문제에 탁월한 식견을 인정받았다.
◇대안미래연구소의 역작 ‘취약성 2030’
대안미래연구소는 최근 미래 예측과 관련해 네 가지 시나리오를 골자로 ‘Vulnerability(취약성) 2030’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는 정책 당국은 물론이고 기업에서 필독서로 꼽을 만큼 정확하게 미래를 조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버트우드 재단과 함께 연구한 보고서에서는 빈곤이 앞으로 인류가 짊어져야 할 가장 큰 과제로 들었다. 실제로 1930년대 44%에 달했던 미국 빈곤층은 1970년대 7% 이하로 낮아졌다가 현재 15%로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 가지 미래 시나리오 가운데 첫 번째는 ‘컴백(Comeback)’ 현상 재현이다. 경제가 회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업률이 높고 빈곤층 다시 늘어나고 있다. 두 번째는 ‘어두운 시기(Dark Decades)’로 규정지었다. 미국 경제가 더블 딥 침체를 겪으면서 기름 값이 최고치를 찍고 다시 경제 불황에 빠져들었다. 세계에 매장된 석유의 반 이상을 사용하면서 가격도 상승하고 이로 인해 빈곤층이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시나리오는 다소 선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세 번째는 ‘평등 경제(Equitable Economy)’ 실현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경제가 무엇인지 조망하고 있다. 미래에는 많은 사람이 빈곤에서 헤어 나올 수 있도록 뉴딜 정책을 펼치고 모두에게 작용하는 경제, 평등한 경제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게 시나리오의 골자다. 마지막으로 ‘창조적 커뮤니티(Creative community)’ 도래다. 앞으로 30년 동안 미국에서 많은 중간 계층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어떤 기술적인 해결책을 활용해 지금의 빈곤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담고 있다. 에너지 기술 개발을 대안으로 꼽으며 가정에서 태양광, 풍력 에너지 발전이 필요하고 지역에서 농산물을 재배하고 가정에서 농산물 생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