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특별대담/노보셀로프 맨체스터 대학 교수 & 홍병희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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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의 달걀. 그 누구도 세우지 못한 달걀을 콜럼버스는 깨뜨려 세웠다. 발상의 전환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맨체스터 대학 교수팀(영국)의 연구업적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들은 2004년 세계최초로 그래핀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셀로판테이프로 말이다. 너무 간단해서 믿기 힘든 방법이었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이 이들에게 돌아간 것은 그래핀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때문이다. 강철보다 100배 강하고 다이아몬드보다 열전도도가 두 배나 높다. 전하이동도는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보다 100배 우수하다. 그동안 한계라고 여겨진 수많은 분야의 해결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투명전극이나 복합소재 등을 중심으로 2015년 300억달러, 2030년 6000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꿈의 신소재 그래핀. 탄소 1개 층으로 이뤄진 이 2차원 물질은 과거에는 이론상에서만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10년도 채 되지 않아, 전 세계가 전쟁을 치르듯 앞다퉈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노벨상 수상조차 과거가 됐을 정도다.

 전자신문은 창간 29주년으로 그래핀 분야에서 커다란 이정표를 세운 과학자들의 대담을 마련, 고견을 들어봤다. 2010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콘스탄틴 세르게이 노보셀로프 맨체스터대학 교수와 홍병희 서울대 교수가 그들이다. 홍병희 교수는 세계 최초 대면적 그래핀 개발을 이끈 인물이다.

 이들은 경쟁자이면서 좋은 협력자다. 세계적인 연구 부흥을 이끌기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번 대담은 세계 그래핀 연구 현황과 전망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 과학계에서 노벨상은 미지의 영역이다. 단 한명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때로는 콤플렉스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노벨상이 과학계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 하지만 노벨상은 혁신적인 연구를 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 아닌가. 혁신적인 연구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과학계를 초라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창간 29주년 대담에서는 한국과 세계 연구계의 현주소를 다룬다.

 

 ◇그래핀 “전 세계가 전쟁 중”=노보셀로프 교수는 그래핀을 ‘민주적인 소재’라고 일컬었다. 그래핀의 물리현상을 다른 곳에서 발견하려면 수억·수십억 원의 설비가 필요하지만, 그래핀은 그렇지 않다.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교수가 셀로판테이프를 이용해 추출해 낸 것처럼 누구나 싸게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전혀 다른 분야의 방식을 접목할 수도 있고, 여러 시도를 해보아야 한다. 셀로판테이프 방식은 사실 표면과학 등의 분야에서는 이용하던 방식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렇게 ‘민주적인 소재’인 만큼, 경쟁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가 시장 선점을 위해 뛰어들었다. 유럽은 1년에 1억유로씩 10년간 쏟아 붓는 그래핀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IBM, 인텔, 바스프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그래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한국에 와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닐 여유조차 없다고 했다. 소리 없는 전쟁과도 같은 그래핀 연구 전쟁 탓에 잠시도 짬을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그래핀 추출은 가능해 졌지만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 갓 생명을 얻은 그야말로 신소재인 만큼, 어떻게 응용할지는 학계와 산업계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두 교수는 산학협력의 절실함을 강조했다.

 홍병희 교수는 “한국에 많은 기업들이 그래핀에 관심을 갖고 연구개발을 하는 덕에 전 세계가 한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아직 기초연구를 많이 해야 하지만 산업화를 염두에 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교류협력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는 노보셀로프 교수는 “기초연구자들은 산업현장의 니즈를 모르는데 산업계가 방향만 제시해줘도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랩에서 1년 동안 풀려고 하는 문제를 이미 산업계에서 해결한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며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덧붙였다.

 ◇노벨상 “조급해서는 안 된다”=노벨상이 권위 있는 상이고,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에 한명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이 과학계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객이 뒤바뀌는 꼴이다. 오랜 시간동안 기초과학연구에 투자하고 인내하며 결과물을 기다린다면 노벨상은 뒤따라 올 수 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영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것은 오랫동안 기초과학을 연구해 오며 경쟁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영국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곳을 탐구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며 “이러한 연구 환경은 1~2년 만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세대를 거쳐 가면서 가꿔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발전하고 있으니 조만간 최고 수준의 과학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며 “너무 조급해서는 안된다. 다음 세대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병희 교수는 축구를 예로 들었다. 브라질이 축구 명문이 된 것은 그만큼 축구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꼽자면 몇명 되지 않는다.

 홍 교수는 “일본과 비교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이미 40~50년 전부터 노벨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사실 한국은 80년대 후반 들어서야 비로소 ‘연구’의 기초가 잡혔다”고 설명했다. “내가 안되면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뿌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산업과 교류가 강점, 영국은 기초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강점=두 교수는 서로 경쟁자이면서 협력자다. 교육과학부에서 지원하는 글로벌리서치랩(국제공동연구실) 프로젝트도 함께 한다. 2차원물질을 이용해 새로운 물질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다. 학회에서도 자주 만난다. 그래핀 연구 부흥을 위해 많은 이들을 돕기도 설득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의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질 기회가 많았다.

 노보셀로프 교수가 한국 환경에 대해 부러워하는 점은 바로 ‘산업계와의 연결’이다. “한국이 지금은 나노분야에서 3~4위 수준이라고 하지만, 곧 1위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을 만나기 위해 방한하는 일도 많았다.

 그는 “산업계가 요구하는 것을 잘 몰라 한국의 홍 교수와 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자유로운 연구환경은 한국에 꼭 필요한 요소다.

 안드레 가임 교수는 매주 금요일이면 독특한 실험을 한다. 일명 ‘금요일 실험’. 금요일에는 기존에 하던 연구를 제쳐두고 새로운 연구를 한다. 아주 예외적으로 엉뚱한 실험이 대상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물의 자성특성을 찾는다든가 물의 흐름을 이용해 발전을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한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들이다. ‘셀로판테이프’방식도 이 실험에서 나왔다.

 게다가 노보셀로프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제한적으로만 수업을 하고 거의 연구에 집중한다.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힘든 것이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홍 교수는 “연구에 자질이 있는 사람과 가르치는 것에 자질이 있는 사람이 다를테고 두 가지 모두 부수적인 일로 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며 “연구에 집중하거나 가르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공계 위기 극복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좋은 선생님을 키우는 것”=한국에서 이공계 위기라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하지만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선진국에서 이미 겪고 있는 일이다.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것이다. 첩경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먼저 ‘선생님’에 주목했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선생님은 동기부여에 가장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 때에는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이 선생님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이공계 위기는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교육, 그 중 좋은 선생님을 양성하는 것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병희 교수는 어린 시절 교육에서 동기부여가 잘 되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석 입학한 학생이 연구에서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예를 든 그는 “요즘 학생들 수준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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