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지의 문제다.”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평소에 말했던 디자인 철학이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1996년이다. 잡스가 불러일으킨 스마트기기 전쟁에서, 얼마나 똑똑한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을 제공하는지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한 것을 보면 그의 혜안은 놀라울 정도다. 스마트 패러다임은 하드웨어 시장을 ‘사용자 트렌드에 맞추는’ 기조에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소비자는 자신의 사용 방식에 맞는 기기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UX를 가능케 하는 상품을 구매하려 한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 등 스마트 시대를 연 모바일 기기는 최고의 UX를 제공하기 위한 경쟁을 벌인 지 이미 오래지만 갈수록 격화되는 양상이다. 애플과 삼성전자 등 ‘글로벌 스마트폰 투톱’을 비롯해 LG전자·HTC·모토로라 등 스마트폰 제조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UX 강화에 나서고 있다. 반면에 하드웨어에 대한 기존 고객 충성도를 믿었던 기업들은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다. 노키아가 단적인 예다.
◇애플, ‘통합 플랫폼’으로 UX 고도화=아이폰4를 부착한 퍼터를 들고 퍼팅을 5차례 시도하니 ‘속도와 패턴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와이파이 기능이 내장된 체중계에 올라서니 아이패드2가 체중 변화 추이를 분석해준다. 아이패드2와 TV를 HDMI 케이블로 연결하고 패드용 화면과 TV용 화면이 다르게 나오는 ‘듀얼 스크린’ 기능을 이용해 훌륭한 교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iOS 모멘텀’ 행사를 위해 최근 방한한 스코트 블로드릭 애플 제품담당 시니어디렉터(SD)가 기자와 만나 소개해 준 iOS용 애플리케이션(앱)들의 기능이다. 블로드릭 SD는 “애플의 핵심 전략은 통합 플랫폼”이라며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소프트웨어 버전과 하드웨어 플랫폼을 각기 다르게 하면 고도화된 UX 확보가 어렵고 개발자들도 꺼리게 돼 새로운 혁신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에 통합 적용된 iOS와 30핀 포트가 ‘포스트 PC’ 시대에서 다양한 분야 기업들이 애플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게 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구글 안드로이드 운용체계가 기기별로 업그레이드 일정이 다르고 하드웨어 인풋·아웃풋 인터페이스도 각기 달라 외부 개발자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점도 겨냥했다.
통합 플랫폼의 힘은 강했다. 애플 앱스토어 누적 내려받기 건수는 150억건을 넘어서 1분당 평균 9000건의 내려받기가 이뤄졌다. 또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75%가 아이패드를 회사 차원에서 도입해 사용하고 있으며 iOS를 사용하는 기기의 판매는 2억대를 돌파했다. 지난 2분기 아이폰 판매량은 2000만대를 넘어섰다. 올가을부터는 여기에 ‘아이클라우드’도 더해진다.
◇안드로이드 진영, 기기에 UX 기술 집약=‘사용자 경험을 사운드로 디자인하라.’ 인기 CM송이었던 ‘망고와 구아바의 사랑노래’를 제작했던 지성욱 책임과 대우전자 디지털사업팀에서 음원 개발 등을 맡던 윤중삼 책임은 삼성전자에서 ‘AUI 사운드 디자이너’ 역할을 맡고 있다. AUI(Auditory User Interface)란 벨소리, 버튼음을 포함해 휴대폰에 들어가는 모든 사운드를 일컫는다. 여기에는 사용자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경험에 대한 만족도 중요시된다.
윤 책임은 “브랜드 사운드 무드를 정하기 위해 일반 사용자 90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선호도 조사를 진행했다”며 “그 결과 혁신, 희망, 새로움 등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삼성에 기대한다고 분석하고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운드뿐만이 아니다. 갤럭시S로 돌풍을 일으키며 애플과 ‘스마트폰 글로벌 투톱’ 구도를 형성한 삼성전자도 다양한 측면의 UX 고도화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출시 85일 만에 전 세계 판매량이 500만대를 넘어선 갤럭시S2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UX 기술이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에 비해 약간 ‘뻑뻑하다’는 느낌을 주던 갤럭시S의 터치감을 치밀한 최적화로 대폭 개선했다. ‘기울이기’ 기능으로 최선의 UX를 제공하기 위해선 관련 측정 실험만 2400여회를 진행했다.
애플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이른바 ‘안드로이드 연합’은 애플과 같이 여러 종류의 기기에 통합적인 플랫폼을 적용하기 힘들다. 기업도 다양하고, 제품군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대신 갤럭시S2처럼 기기의 사용자 체감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체 1만여명의 임직원 중 소프트웨어 인력만 4000명에 달하는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HTC는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센세이션’에서 ‘3D 센스UI’를 처음 선보였다. 안드로이드 사용성을 대폭 높였다고 평가받는 센스UI에 3D 그래픽을 입혔다. 역시 3D 센스UI를 탑재한 국내 최초 안드로이드 탑재 와이브로 스마트폰 ‘이보4G+’는 일평균 판매량이 3000~4000대에 달할 정도로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LG전자는 계열사가 가진 디스플레이 기술의 우월성을 십분 활용해 ‘옵티머스 빅’ ‘옵티머스 3D’ 등 시각적인 UX를 새롭게 열어주는 단말기를 속속 출시하고 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