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SW) 업계가 ‘인력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SW 업계 구인난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선 그 상태가 심각하다.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국내 SW산업의 생태계 붕괴는 물론이고 고사할 지경이다. 10년 전 ‘기회의 땅’으로까지 인식되던 IT 시장이 인력 기근의 불모지로 변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토종 SW 업체들의 설 땅은 더욱 좁아졌다. 국내 SW 산업의 최대 재앙과 시련으로 인식되는 ‘인력 가뭄’의 현실과 문제, 대안을 3회에 걸쳐 분석한다.
웹에디터 솔루션을 개발하는 중소 SW업체의 A사장. 그는 매일 아침 가슴 졸이며 출근길에 오른다. 오늘은 누가 또 책상에 사표를 올려놓진 않았는지, 지난달 뽑은 SW엔지니어가 정상 출근을 했을지가 당장의 걱정이다. 이 회사는 최근 공들여 뽑은 개발자 5명이 거대 게임회사와 포털업체로 떠났다. 월급을 올려줘도 개발자들이 언제 회사를 떠날지가 불안한 게 A사장의 심정이다. A사장은 “인력을 공들여 키워놓으면 대기업에서 죄다 빼내 간다”며 “올해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지 못해 제품 개발 일정을 연기하는 등 회사 생존마저 위협받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이 열악한 중소 SW기업 인력난은 심각성을 더한다. 김상배 나모인터랙티브 대표는 “대기업에서 쓸 만한 인력을 죄다 뽑아가 국내 시장에서는 더 이상 답이 없다”면서 “지난달엔 SW 인력을 구하러 베트남까지 다녀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력난은 일부 업체만의 문제가 아닌 중소 SW업계가 똑같이 겪고 있는 풀지 못할 숙제다. 한글과컴퓨터, 티맥스소프트, 알티베이스, 안철수연구소, 더존비즈온 등 국내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SW업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NHN 등 대기업과 포털업체, 통신사에서 매달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 단위로 인력 흡수에 나서면서 이들 기업 역시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경력사원 모집은 꿈도 꿀 수 없다. 신입사원 채용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력 가뭄은 갈 길 바쁜 국내 SW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장 제품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인력조차 구하지 못해 작업을 연기하는가 하면 프로젝트 수주를 포기해야 하는 등 사업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실제로 오픈플럼, 테크데이타, 화이트정보통신 등은 올해 평균 2~3건 프로젝트 수주를 포기했다. 사업을 수행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탓이다.
최재형 테크데이타 컨설팅서비스사업부 과장은 “올 연초 계획했던 인력을 한 명도 채용하지 못해 올해 2~3개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솔루션 신규 개발사업은 아예 진행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박재호 와이즈넛 사장은 “프로젝트를 수주하더라도 필요한 기술자를 구할 수 없어 비싼 외주 인력이나 프리랜서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프로젝트는 외주 인력도 확보가 안돼 자체 인력들을 무리하게 프로젝트에 투입시킨 사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SW기업들은 솔루션 개발 계획을 조정하거나 고객지원 정책을 변경하기도 했다. 야인소프트는 제품 개발 방식을 병행 개발에서 순차 개발로 변경했고, 아웃소싱 개발과 컴포넌트 솔루션을 도입했다. 온더아이티는 고객사에 상주하지 않고 원격개발로 지원할 수 있도록 고객지원 정책을 변경했다.
문제는 이 같은 SW 인력 수급 문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구직자들이 대기업 또는 네임밸류가 높은 기업만을 선호하는 현상들이 더욱 두드러져 인력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부 SW업체는 아예 국내 인원 충원을 포기하고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인력이라 해도 쓸만한 사람은 몸값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삼성, LG, KT 등 글로벌 기업들의 입사만 희망하고 있어 해외 인력 유치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표>국산 SW업체들의 인력난 실태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