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정부과천청사 지식경제부에 한국전력공사·한국수력원자력·5개 발전회사 사장 등 국내 전력관련 기관장들이 모였다. 연이은 무더위에 전기사용량이 급증하자 전기절약 대국민 협조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국민 여러분이 자율적으로 에너지 절약에 참여한다면 올 여름 전력수급 문제를 무난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냉방 수요를 줄여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겨울 역대 최대 전력사용량을 경신하며 들이닥친 전력위기가 이번 여름에도 다시 찾아올까 정부와 전력업계는 노심초사다.
◇올 여름 전력수급 ‘긴장의 연속’=“갈수록 전력수급 상황이 안 좋아 지고 있다.” “지난해도 힘들었지만 올 여름 전력수급은 더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전력업계 관계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이다. 본격적인 더위가 가까워지면서 이들의 걱정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달 19일 최대 전력사용량(전력피크)이 7139만㎾를 기록하며 역대 7월 전력피크를 경신해 전력수급 위기 상황을 경고했다. 이날 전력사용량은 지난해 최대치인 7130만㎾를 넘어서는 것으로 전기절약 대국민 담화문 발표의 계기가 됐다.
5월부터 불티나게 팔려나간 냉방 제품과 올 여름 기온이 평년을 웃돌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 전력업계는 올 여름 전력수급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터다. 하지만 그 시기와 사용량은 당초 예상치를 벗어나고 있다.
올해 전력공급능력은 신고리 1호 등 신규 발전기 준공으로 지난해보다 463만㎾ 증가한 7897만㎾ 정도다. 반면 이번 여름철 전력피크는 지난해보다 488만㎾ 늘어난 7477만㎾를 기록할 전망이다. 공급예비력 420만㎾로 전력수급 외줄타기가 불 보듯 뻔하다.
지난 5년간 년 평균 전력수요 증가는 305만㎾이었던 것에 대비 공급은 270만㎾가 느는 것에 불과했다. 신규 발전소 증설이 수요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전력업계는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전력수급 위기는 매년 반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폭풍전야의 전력업계=지금 전력업계의 분위기는 폭풍전야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지난주 폭우에 이어 바캉스 시즌이 시작하면서 전력수요는 잠시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휴가철이 끝나는 이달 15일 이후 2주간 전력수급 대란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전력·전력거래소·발전회사 등 전력 관련 기관들은 앞으로 열흘 남짓 남은 기간 동안 수급시스템과 발전시설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전력사용량 급등으로 한차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정부는 서둘러 여름철 전력수급 안정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에 발전소 및 송·배전 설비 운영책임제를 도입해 성과급 차등 지급 등의 조치를 진행할 계획이다. 발전소 고장시 신속한 복구를 위해 ‘긴급복구팀 24시간 대기제’를 운영하고 추가 공급력 확보를 위해 민간발전사업자의 ‘추가발전 인센티브제’도 시범 도입한다. 에너지 다소비기업과는 추가 약정을 통해 전력피크시 수요분산에 주력해 나갈 방침이다.
최근 3년간 혹서·혹한기 전력수급 위기를 겪어온 전력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전력은 여름철 전력설비 재해예방 특별대응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고장예방 중심의 설비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전주에 대해서는 일제점검 및 보강을 시행해 결과에 따라 검사필증을 부착하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설비진단센터를 신설해 변전소 및 지중케이블 부분방전 진단, 배전선로 적외선 열화상 진단, 저주파 및 초음파 진단 등 첨단장비를 동원해 설비고장을 최소화하고 있다.
발전회사들도 6·7월을 기점으로 해서 계획정비와 노후발전설비의 성능개선 작업을 마무리하고 운전을 시작하는 등 여름철 대비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전기 생산에 들어간 예천양수발전소처럼 이번 여름철 전력수요 대비를 위해 준공시기를 앞당긴 사례도 있다.
현장직원들 역시 설비안정화를 통해 무고장 운전으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각오다. 한여름 보일러 열기에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지만 지난주 폭우에 행여나 고장설비가 있을까 설비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등 자연재해에도 한건의 고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내 전력수급을 조율하는 전력거래소. 그중에서도 최일선인 중앙급전소는 말 그대로 비상태세다. 약 50여명의 직원이 5개조로 나뉘어 3교대로 근무하는 이곳은 전국의 전력수급을 책임지는 곳으로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현재 전력사용량과 전국 발전소의 가동현황을 오가는 중앙급전소 근무자들의 눈은 쉴 틈이 없다. 휴가시즌이라 전력사용량이 줄기는 했지만 기후변화로 변덕스런 날씨에 항상 긴급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도 대부분의 발전소들이 풀가동 중인 상황에서 곧 있으면 다가올 본격적인 전력피크 기간이 내심 걱정되기도 한다. 발전 및 배전설비가 고장 나지 않고, 사용자들이 조금이라도 전기를 절약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전력거래소는 올해 보다 적극적인 수요관리로 공급예비력을 450만㎾까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연이은 전력피크, 절약이 우선=지난 10년간 전력피크 경신은 단 한해도 거른 적이 없다. 재작년에는 이례적으로 겨울철인 12월에도 전력피크를 경신했으며 지난해에는 겨울철 두 차례, 여름철 한 차례 등 총 3차례의 전력피크를 갈아치우면서 한국이 더 이상 전력수급 안전국이 아님을 방증했다.
과거 가정에서 사용하는 여름철 가전제품은 TV·냉장고·선풍기·세탁기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스마트폰·김치냉장고·에어컨 등이 보편적인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았고 기존 TV·냉장고 등도 그 크기가 커졌다. 전력공급량은 커졌지만 과거보다 전기절약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이유다.
전력거래소는 올 연말에도 또 한 번의 전력피크 경신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달부터 인상된 전기요금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사용량 증가율 억제력은 있을지라도 전체 사용량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전력설비에 대한 적기투자가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발전소 증설에 대한 지자체의 반대로 쉽지 않다.
매년 전력사용량 수치는 지금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대규모 전력대란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출력증대와 수요관리만으로 수급을 안정화하기에는 거의 한계까지 온 셈이다. 전기절약은 전력수급 안정화를 위한 우선 과제이자 열쇠다. 정부의 전기절약 대국민 담화문이 과거보다 더욱 절실히 들리는 이유다.
<표>지난 10년간 최대 전력 현황(단위: 만㎾, %)
자료: 전력거래소
<표>여름철 전력수급 현황(단위: 만㎾, %)
자료: 전력거래소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