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소재 기업들이 우리나라를 과거 단순 생산 기지 수준에서 최근 첨단 기술 연구개발(R&D)과 인력 조달 근거지로 활용하는 등 강도 높은 현지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LCD 시장점유율 50%, AM OLED 90%, 반도체 20% 등 세계 선두권으로 부상한 한국 제조업 위상을 반영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소재 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기술 경쟁력이 취약한 업종이라는 점에서 다국적 소재 기업의 이 같은 행보를 세계 일류로 도약하기 위한 호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도레이(대표 닛카쿠 아키히로)와 도레이첨단소재(대표 이영관)는 28일 경북 구미에서 국내 최초로 탄소섬유 공장 기공식을 갖고, 오는 2013년 1월부터 연산 2200톤 규모의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총 1조3000억원을 탄소 섬유 생산 라인 증설과 IT 소재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듀폰도 최근 ‘이노베이션 센터’를 경기도 분당에 개설한다고 밝혔다. 듀폰 이노베이션 센터는 우선 국내 전자·자동차·에너지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R&D·기술지원을 강화하고, 응용 시장을 공동 개척하겠다는 취지로 설립한다.
다우케미칼은 올 초 전자재료 사업 본사를 한국으로 이전했다. 다국적 소재 업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에 4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발광다이오드(LED)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생산 라인인 천안 3공장 증설에 착수했다. 오는 11월에는 다우케미칼 전자재료 그룹의 글로벌 R&D 센터인 ‘다우 서울 테크놀로지 센터’를 연구인력 300명 규모로 개설한다.
독일 머크는 지난해 5월 유럽 이외 지역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도 평택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LED, 액정, 광학 등을 아우르는 ‘첨단기술센터’를 개소했다. 지난해 9월부터 전자소재 및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국내 업체와 공동 R&D를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얼라이언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쓰리엠은 최근 한국인을 국내 법인 대표로 선임하면서 현지화에 나섰다. 전체 신제품 가운데 국내 현지 개발 신제품 비중을 70%로 끌어올리기로 하고, R&D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스미토모화학은 최근 한국에 약 2500억원을 투자해 AM OLED용 터치스크린 생산 공장을 구축하기로 했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재료 업체인 일본 JSR도 조만간 국내에 R&D 센터를 신설할 예정이다.
이처럼 세계 유수 소재 기업이 한국을 글로벌 거점으로 삼는 것은 무엇보다 전자·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떠오른 대형 고객사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중국과 비교해 기술력과 노동력에서 경쟁 우위에 있는데다, 거대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관문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첨단 소재기술이 한국 제조업 기반과 결합하면 이른바 거대 ‘인라인’ 생산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기다 소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해외 선진 기업 유치에 관심을 쏟는 것도 한 배경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소재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이 가속화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특허 등 지식재산권 보상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해외 현지 기업들이 고용한 내국인이 특허 기술을 개발하면 지식재산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신두 서울대 교수는 “해외 첨단 소재 기업을 많이 유치할수록 경쟁력은 물론이고 고용 창출 면에서 바람직하다”면서 “앞으로 국내 연구 인력의 특허 보상 체계나 한국에서 개발한 특허 기술을 외국 본사가 사용할 때 권리 배분 문제 등을 해외 선진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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