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탄 소유즈 TMA-12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솟아오르자 발사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수천명의 관객이 일제히 박수치며 환호했다. 같은 시각 국내에서도 발사장면이 생중계됐다. 당시 국내에서는 대형 모니터 앞에서 5000만 국민 모두가 한마음이 돼 카운트다운하며 ‘우주’를 향해 ‘희망’을 함께 쐈다. 2008년 정점이던 국제 금융위기의 고통도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이겨냈다.
2011년 4월 7일. 우주인이 우주정거장 미르에 다녀온지 만 3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로호는 1·2차 발사에 실패했다. 기관장은 지난 2월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발사체 개발 예산은 3분의 1 토막이 났다. 우주 관련 예산과 정책을 지원하던 한국연구재단의 우주단장 자리도 지난달 은근슬쩍 사라졌다.
무엇보다 우주 개발에 밤을 잊고 열정을 바쳤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사기는 바닥을 쳤다. 이제는 더이상 내려갈 ‘지하실’도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고 희망이던 ‘우주 개발의 꿈’이 처절히 망가진 것이다.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을 맡고 있는 임철호 항우연 선임본부장은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오뚜기처럼 다시 털고 일어서 우주를 향한 개척자로서의 꿈을 실현해 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로호 실패는 대한민국의 책임”=지난 2월 느닷없이 이주진 항우연 원장이 나로호 발사 실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나로호 발사를 맡았던 교육과학기술부 거대과학정책관은 1월에 교체됐다. 사실 이 원장의 사퇴는 ‘느닷없이’는 아니다. 지난해 9월부터 교과부에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과학기술계는 이에 대해 과학기술인의 자존심을 걸고 지키겠다는 말도 내놨다.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도 거들었다. 끝까지 막겠다고 약속도 했었다.
그러나 ‘예산 앞에서, 권력 앞에서’ 이주진 원장은 그렇게 무너졌다. 과학기술계의 자존심도 이날 함께 무너진 것이다. 이어 3월에는 우리나라 우주 개발 정책과 예산을 집행해온 한국연구재단 우주단장 자리가 은근슬쩍 사라졌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에서 과제 실패가 과학기술정책 방향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자까지도 철저히 망가뜨린다는 ‘수치스런’ 전례가 남은 것이다.
4월은 과학의 달이지만, 항우연 연구원의 사기는 바닥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달 내 결정될 신임 기관장으로 이공계 전공과는 별반 관련 없는 차관급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출연연 관계자는 “나로호 발사 책임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국가 R&D체제, 나아가 대한민국의 책임이지 개인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며 “우리나라 R&D 성공률이 90%에 육박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항변했다.
실제로 기자가 2006년 다목적실용위성 2호 발사 취재차 러시아 플라세츠크를 방문했을때 작은 공원 한켠에 1981년 2000번째 위성발사라는 푯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제 두 번 쏜 것이다.
◇우주인 육성 프로젝트 일회성이었나=260억원을 들인 우주인 이소연 박사는 지금 과학기술 전도사가 돼 있다. 때론 R&D 욕심에 작은 선충인 ‘C엘레강스’ 연구를 위해 실험실을 들락거리고 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국내 우주인 육성 프로젝트는 있으나마나한 실정이다. 이소연 박사가 260억원을 들여 배워온 지식과 노하우를 제2, 제3의 우주인을 만들며 쏟아 부어야 하지만 그럴 대상도 없다. 예산도 배정돼 있지 않다. 260억원은 4대강 예산의 수백분의 1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이소연 박사는 “우주에 가는 일은 예산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 사전에 대비해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주실험도 지속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게 현실이지만 그들을 비난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며 “과학적인 볼륨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우주로 희망을 다시 쏘자=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나로호 1차 발사 때의 국민적인 환호와 열정은 여전히 국민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심은섭 항우연 우주응용미래기술센터장은 “나로호 발사 두 번 실패로 우주에 대한 대국민 열기가 다 식어버려 당혹스럽다”며 “페어링 실패는 최근 미국에서도 일어날 만큼 우주 개발에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지낸 채연석 항우연 연구위원은 “나로호의 성공은 우리나라가 넘어야할 산이다.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며 “현재 러시아와 매끄럽지 못한 관계지만 결국 함께 할 것이라면 최상 상태로 끌고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항우연은 발사 성공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병 환자’와 같다”며 “이를 치유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나로호 3차 발사만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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