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로 부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LG전자 각 사업부는 비상이 걸렸다. 구 부회장 경영 스타일과 업무 성향은 물론 지시와 보고 방식 등을 사전에 알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좀 과장해 안팎의 안테나를 총동원해 새 사령탑 취향까지 면밀히 조사했다. 심지어 보고할 때 좋아하는 색깔·폰트·양식 등 ‘구본준식 발표 매뉴얼’이 돌기도 했다. 그만큼 오너 경영자의 힘은 막강했다. 새로운 오너 사령탑에 거는 기대도 전문 경영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반대로 이는 국내에서 오너 경영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구본준 LG전자호’가 풀어야할 숙제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오너 경영은 강점이 많다. 빠른 결정, 미래 통찰력, 장기적인 회사 운영, 과감한 기술과 인재 투자 등 전문 경영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에 집중할 수 있다. 실행도 빠르고 강력하다. 그만큼 권한이 집중되고 힘이 쏠리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초기에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확실한 동기 부여가 가능하지만 자칫 ‘순간 처방, 깜짝 효과’에 그칠 수 있다. ‘약효’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국 위임 권한이 뒤따라야 한다. 더구나 LG전자는 올해 매출 60조원을 코앞에 두고 있는 공룡 기업이다. 구 부회장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항공 모함’이다. 거함은 각 부문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 제대로 순항할 수 있다. 방향을 결정하는 건 선장의 몫이지만 거함을 움직이는 건 선원들의 몫이다. 톱에서 말단 직원까지 거침없이 소통하는 ‘열린 경영’이 없다면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업부에 대한 권한 부여와 직원의 창의성이 뒷받침될 때 새로운 LG를 만들 수 있다.
또 하나는 생태계 시스템의 중요성이다. 협업을 통한 시너지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애플아이폰이 보여주었듯이 든든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때 시장에서 경쟁력이 나올 수 있다. 협력업체를 기반한 에코시스템은 단순히 상생 관계와 다르다. 사실 LG는 내부 경쟁이 덜하고 커뮤니케이션도 쉽지 않았다. 협력업체도 LG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성장한다는 측면 보다는 기대는 측면이 강했다. 협력업체와 관계를 투명하게 만들고 건전한 긴장 관계가 만들어질 때 확실히 구본준 LG전자호가 달라졌다는 모습을 안팎에 보여 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리더십 정립이 필요하다. 불과 수년 전만해도 전통적인 리더십은 ‘슈퍼 휴먼’ 리더십이었다. 앞에서 방향을 정하고 책임을 지고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수직 모델이 산업의 표준이었다.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시장이 변했고 기술이 보편화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소비자가 달라졌다. 결과적으로 수평적인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LG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휴대폰의 진화 제품이 아니다. 산업 측면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혼자 보다는 같이 갈 때 시장에서 이길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구 부회장이 누차 강조한 제품력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 비즈니스 모델, 유통 체제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나와야 한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오픈 혁신 모델처럼 안팎에서 수많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서로 만나야 한다. LG전자 혼자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난 6개월 구본준 부회장은 대표 취임 후 그 어떤 사령탑보다 숨가쁘게 달려 왔다. 분위기를 바뀌고 국면 전환에 성공한 지금 이제는 진짜 LG전자의 지속 성장 모델을 고심해야 할 때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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