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일 LG전자 사령탑으로 부임한 구본준 부회장은 곧바로 전 직원에게 취임사를 겸한 e메일을 보냈다. 취임 일성은 ‘제품과 품질’이었다. 구 부회장은 “시장 판도를 바꾸는 혁신 제품을 남보다 먼저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존의 조건이며 고객과 타협할 수 없는 게 품질”이라며 이를 놓치면 생존 기반을 잃는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새겨달라고 주문했다.
이는 이전의 전문 경영인과 확연히 다른 메시지였다. 전임인 남용 부회장만해도 ‘글로벌 LG’를 모토로 마케팅에 힘을 실었다. C레벨급을 외국인 임원으로 채우고 영어를 공용화했다. 시장을 아는 마케팅 전문가와 컨설턴트를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속도와 투자 보다는 프로세스와 비용을 따지고, 기술과 생산에 앞서 마케팅과 영업 조직을 추슬러 LG의 변신을 시도했다. 남 부회장의 이같은 경영 스타일은 감성 보다는 이성에 가까웠다. ‘인화’라는 LG의 기본 문화에서 살짝 비껴 있었던 셈이다. 의미있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실기하고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이어 구 부회장이 꺼내든 카드는 ‘초심’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장’이었다. 사업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원론적인 메시지다. 진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품질과 생산력 그리고 연구개발, 인재가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이는 사실 경영의 기본이지만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현장에 있는 직원들을 움직여야 한다. 최소한 2~3년 정도 길게 보면서 회사를 이끌 수 있는 오너 출신이기에 가능했다. 분기·연간 실적을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전문 경영인과 확실한 다르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특히 품질은 구 부회장이 직접 챙겼다. 품질 개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현장을 알아야 하고 해답도 알지만 실천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오너가 직접 챙기기 전에는 요지부동인 게 현실이다. 구 부회장이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지난 6개월 동안 현장을 챙긴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1일 공식 취임 후 한국지역본부를 시작으로 평택· 구미 공장, 중국 톈진· 베이징 생산 법인, 1월초 미국 라스베이스거스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 ‘CES 2011’를 빠짐없이 찾았다.
이 뿐 아니다. 지난해 말 조직개편 때 남영우 사장을 발탁해 경영혁신부문을 신설했고, 우수한 부품 품질 확보를 위해 협력회사에도 생산성 혁신을 지원하라고 강조했다. 취임사에서 언급한 “우리 손으로 LG전자의 명예를 반드시 되찾자”며 전직원이 한 뜻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자고 ‘인간적으로’ 독려했다.
이는 결국 LG 제품 변화로 이어졌다. 이전보다 훨씬 조직은 안정화됐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회복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스마트폰·3D TV·노트북 PC 등 주요 제품의 초반 출발은 나쁘지 않다. 스마트폰은 이미지 회복이 관건이지만 세계 최초로 듀얼코어 제품과 무안경 3D 제품을 내놓으며 앞선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3D TV에서 새로운 FPR방식을 앞세워 경쟁사를 압박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산업계는 바짝 긴장해 있다. 제조업의 기본을 부르짖으면서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 ‘구본준 LG전자호’가 연착륙에 성공했다며 안팎의 평가가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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