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28>박영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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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의 가치를 창출하려면 먼저 고객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연구현장, 산업현장으로 직접 뛰어가야 합니다. 결국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기업형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이 올해 고객 만족을 넘어 실질적인 ‘고객 가치창출 실현’을 선언하고 나섰다.

 박 원장은 지난해 전국 100개나 되는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의 의견을 수렴했다. 기업방문 때문에 움직인 거리만 5000㎞가 넘는다.

 박 원장은 정보화시대, 과학기술 및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 결국 정보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하루에 15페타바이트 즉 미국 내 모든 도서관에 있는 책의 8배에 달하는 엄청난 정보를 생산해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보 총 생산량이 매년 60% 이상 늘어나면서 정보 때문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고, 하루 평균 2시간을 투입하고도 원하는 정보를 얻는 연구자는 겨우 20%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R&D 전 과정에서 정보를 찾아 활용하는데 드는 시간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은 이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공감합니다.”

 R&D의 뿌리로서 정보의 중요성은 날로 커져가는 반면, R&D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역시 정보라는 얘기다. ‘홍수가 났을 때 가장 부족한 것은 다름 아닌 물’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KISTI는 올해 핵심 키워드로 ‘고객 가치창출’ ‘기업형 현장경영’ ‘글로벌화’ ‘사람경영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꼽았다.

 △올해 기관 슬로건으로 ‘고객 가치창출’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올해도 강력한 성과주의 경영을 추진합니다. 지난 2008년 취임 직후 ‘고객가치를 창조하는 세계 일류 정보기관’라는 슬로건을 정했고, 2009년에는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새롭게 환골탈태하기 위해 ‘변화와 도전’을 추진했습니다. 이때부터 매년 연구사업의 20%를 구조조정하고 신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혁신을 추진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혁신 에너지를 모아 전 사업을 고객중심으로 개선했고, 올해부터 실질적인 열매를 하나씩 거둘 계획입니다.

 지난해 출연연 최초로 최상위 1∼2%의 성과를 낸 우수직원에게 전체 인센티브 재원의 10%를 집중 지급했습니다. 직원 가운데 7명이 선정됐고, 이들에게는 1인당 1000만원~3000만원의 성과급이 지급됐습니다. 당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올해는 이와 더불어 경영성과급 지급 차등폭을 70%에서 200%까지 넓힐 계획입니다.

 △지난해부터 발로 뛰는 현장경영을 강조해 왔는데,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30년 가까이 KISTI에서 정보분석을 해왔습니다만 막상 중소기업을 핵심고객으로 정하고 보니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전국의 중소기업 100곳을 KISTI 3개 본부(정보유통, 정보분석, 슈퍼컴퓨팅) 실무자들과 함께 찾아가 직접 면담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했습니다. 다녀보니 절반 가까운 중소기업들이 슈퍼컴퓨팅 지원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데 놀랐습니다.

 앞으로는 기업 CEO의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는 맞춤형 분석정보와 글로벌 마케팅을 지원해줄 수 있는 루트를 개발할 것입니다.

 △기업현장 방문에서 느낀 것을 경영에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지요.

 -대표적인 것이 ‘연구원 1인 1사 정보지원 체제 구축사업’ 신설입니다. 이는 지난해 방문했던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KISTI 연구원 한 명씩을 전담 배치해 맞춤형 지원을 하는 사업입니다. 각 기업이 안고 있는 취약점을 찾아내 정확한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습니다. 성과가 좋은 기업의 경우엔 향후 5년까지도 맞춤형 지원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또 슈퍼컴퓨터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기초연구 중심으로 구입해왔던 소프트웨어를 금형이나 제품성형 그리고 기계설계 등 중소기업 R&D에 실제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확대 구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소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슈퍼컴퓨터 교육과 먼 거리에 있는 기업을 위한 원격교육용 사이버 환경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올해 새로 시작하는 시스템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대학은 사용하지 않는 특허의 유지관리비용으로 매년 수억에서 십수억원을 낭비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자체 기술력을 보유하지 못해 도태되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죠. 대학 기술지주회사, 특허기술 장터, 특허 은행 등 휴면특허를 활용할 방법들이 도입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기술이전과 기술사업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기술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앞으로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팔 사람도, 살 사람도 기술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니 거래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KISTI는 대학이 개발한 기술의 가치를 적시에(특허가 등록되고 난 후가 아닌 기술개발이 끝난 단계)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껏 KISTI가 활용해 온 기술가치평가시스템을 ‘STAR’를 전면 개선하겠습니다. STAR는 특허 이후의 기술에 높은 점수를 주도록 시스템화돼 있는데, 반면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기술개발이 마무리될 시점에 기술이전을 추진합니다. 때문에 실제보다 낮게 기술가치 평가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를 위해 KISTI는 올 하반기부터 STAR를 각 대학에 보급할 계획입니다.

 △사업무대를 세계로 넓히는 글로벌화에도 집중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글로벌화를 시작했습니다. 국내 중소기업이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미국 최고의 기술사업화 지원기관인 텍사스주립대학 IC2 연구소와 공동으로 ‘테크2글로벌 마켓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원활히 소화할 글로벌 인재를 직접 해외에 나가 채용해 오는 ‘글로벌 인재채용’도 출연연 최초로 추진했습니다.

 올해도 그런 사업을 계속하며 특히 신흥시장인 중국을 KISTI의 주사업무대로 확산할 계획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 무역의 26%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반면 미국·일본과의 무역의 합은 2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제 선진국의 과학기술정보뿐 아니라 중국에서 생산되는 정보를 국내 연구자들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올 상반기 중으로 중국에 ‘KISTI 지원’과 ‘DB센터’를 구축해 중국의 과학기술 및 산업시장정보를 현지에서 직접 수집해 곧바로 한글로 가공·처리한 다음 국내로 유입하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입니다.

 현재 중국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만 4700여 개에 이릅니다. 이들에게도 과학기술 정보제공, 정보분석을 통한 컨설팅, 슈퍼컴퓨팅 등 국내의 중소기업에게 제공하는 것과 동등한 수준의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협의회(ASTI:KISTI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학교수, 연구자, 정부기관 등이 함께 역량을 모아 중소기업 성공을 도모하는 협의체, 2011년 현재 회원 1만2000여명) 지부를 옌벤과 다롄에도 세웠습니다.

 △혁신적 마인드를 가진 기관장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단합을 위해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취임 첫 해에는 일단 ‘변하지 않고는 어떤 발전도 불가하다’는 혁신마인드를 심기위해 노력했고, 지난해에는 직원들과 더 자주 소통의 장을 만들고자 20번이 넘는 간담회를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사람’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배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단기성과 위주의 경영은 이미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랩니다. 끊임없이 성과가 성과를 낳는 선순환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신뢰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조직원들 사이에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집단 창의성과 집단 지성이 발휘되고, ‘배려와 신뢰를 통한 가치창출’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 KISTI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3가지 키워드로 ‘서로 신뢰하는 KISTI’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KISTI인’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KISTI’를 제시하고 ‘고객가치를 창조하는 세계 일류 정보기관’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향해 끊없이 질주하겠습니다.

 

 ◇슈퍼컴 4호기 활용

 KISTI가 지난해 말부터 공식 가동을 시작한 슈퍼컴퓨터 4호기가 올해부터 활용 방향을 전면 전환한다.

 이 슈퍼컴은 324테라플롭스(TFLOPS)의 연산처리 성능을 가진 세계 20위권 슈퍼컴퓨터다. 고성능 PC 1만1000여 대를 동시에 구동하는 것과 같은 성능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우리나라 인구 5000만명 전체가 10년 이상 계산기를 두르려 수행할 연산을 단 1분만에 수행할 수 있다.

 KISTI는 슈퍼컴퓨터에 대해 기존에는 국가 현안과제를 비롯한 기초과학 R&D에 대부분의 슈퍼컴퓨팅을 집중하고, 기업의 R&D에 활용되는 자원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기업지원 부분을 크게 확대해 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빠른 시간 안에 높은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초과학지원과 기업지원을 슈퍼컴퓨팅 양대산맥으로 잡고 사업을 추진한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 가시화 시스템인 피카소를 활용해 영화사와 드라마제작사들이 첨단 컴퓨터그래픽스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KISTI는 이미 ‘국가대표’ ‘IBK 애니메이션 광고(도마뱀 회사원 편)’와 같은 영화를 통해 피카소의 역량을 알려왔다.

 이와 함께 KISTI는 슈퍼컴퓨터로 분석한 데이터를 곧바로 실물사이즈의 첨단 가시화 환경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업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러한 슈퍼컴퓨팅 지원이 더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가슈퍼컴퓨팅육성법’ 입법화도 강력히 추진한다.

 지금껏 우리나라는 경제력이나 R&D 규모에 비해 슈퍼컴퓨터 분야에 대한 투자가 매우 미흡했다.

 이에 따라 KISTI는 슈퍼컴퓨팅 육성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부터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고 있는 슈퍼컴퓨팅 육성법이 신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다는 복안이다.

 

 ◇박영서 원장은

 박영서 KISTI 원장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KISTI에 몸담아 왔다.

 박 원장은 광범위한 정보를 분석해 기업(주로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사업화 타당성을 평가하는 프로젝트를 국내 최초로 추진했다. 기업이 보유한 기술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기업 특성에 맞는 유망사업 아이템을 발굴해주는 등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첨단 정보컨설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미래를 읽는 힘’에 있다. 30년 가까이 글로벌 정보 속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국가 과학기술과 경제 패러다임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훤히 꿰뚫고 있는 것.

 박 원장은 일본 와세다대학 응용화학과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와 석사는 아주대와 한양대서 각각 이수했다.

 지난 84년 KISTI의 전신인 산업연구원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으로 파견을 다녀왔다. 이후 산업기술정보원 산업무역부 부연구위원과 산업시장정보분석부 부장, 산업정보분석실 실장, TCI사업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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