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발광다이오드(LED) 시장 팽창과 함께 원자재·장비 중 ‘쇼티지(공급부족) 3형제’로 꼽혔던 것이 사파이어 잉곳·삼중메틸갈륨(TMG)·유기금속화학증착장비(MOCVD)다. 사파이어 잉곳과 TMG를 미처 공급받지 못한 업체들은 LED 생산라인을 구축해놓고도 원자재가 없어 가동을 못할 정도였다. MOCVD는 삼성LED·LG이노텍이 지난해까지 각각 130대·135대 안팎으로 설치대수를 늘리는 등 증설 경쟁이 불붙으면서 공급부족 현상을 겪었다.
이 같은 원자재·장비 수급난은 지난해 3분기부터 LED 업황 부진이 이어지면서 점차 완화되는 추세다. 특히 해외에 상당부분 의존했던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속속 시장에 참여하면서 LED 관련 소재부문에서도 빠른 속도로 기술자립, 시장확대가 진행 중인 것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TMG의 경우 공급부족 우려가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초 1그램당 6~1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것이 최근 3~4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MOCVD 역시 장비 업체들이 생산능력을 증설하면서 수급이 비교적 원활한 편이다.
반면에 사파이어 잉곳 가격은 LED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직경 2인치 사파이어 잉곳을 기준으로 1㎜당 평균 23~24달러 선에서 거래된다. 이는 공급부족 현상이 극심했던 지난해 상반기 14~15달러 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80% 정도 높아진 수준이다.
◇생산량 증대 잰걸음=사파이어 잉곳 가격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 것은 장치 산업 특성상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증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 초 사파이어 잉곳·웨이퍼 수급에 애를 먹었던 중국·대만 중소 LED 업체들이 서둘러 물량 확보에 나선 것도 공급 부족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기존 사파이어 잉곳 업체들은 물론이고 신규 진출을 추진하는 업체들의 증설 및 연구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토종회사인 사파이어테크놀러지의 생산능력이 기존 1·2위 업체인 미국 루비콘·러시아 모노크리스털을 넘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사파이어테크놀러지의 올해 연간 잉곳 생산능력은 2인치 웨이퍼 환산 기준, 1200만장에 이른다. 루비콘이 약 1300만장, 모노크리스털이 1100만장 수준으로 관측된다는 점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이 회사는 올해만 600억원, 내년에 800억원 등 오는 2012년까지 총 14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생산능력을 더욱 높일 예정이다.
최근 6인치 잉곳 양산에 성공한 아즈텍도 증설 작업에 한창이다. 이 회사는 다음 달 월 20만장, 하반기에는 월 33만장 수준까지 생산시설을 늘리기 위해 설비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 밖에 한솔테크닉스·실트론·OCI 등 차세대 주자들도 사업 채비에 분주하다. 한솔테크닉스는 지난해 300억원을 투자해 2·4인치 잉곳 생산설비 구축에 나섰다. 실트론은 올해 사파이어·실리콘 잉곳 라인 증설에 총 294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OCI는 지난달 938억원을 투자해 연산 400만㎜ 수준의 사파이어 잉곳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대구경화 경쟁 불붙었다=사파이어 잉곳 업체들이 생산능력 증대와 함께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대구경화 경쟁이다. LED 업체들이 원가 혁신을 위해 대구경 웨이퍼 공정 개발을 추진하면서 원자재인 잉곳도 몸집 불리기가 한창이다.
특히 대구경 잉곳 개발에 가장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루비콘이 지난달 12인치 잉곳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업계 관계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은 최근 기업설명회 자리에서 “12인치 잉곳은 당장 LED 생산에 사용한다기보다는 기술 리더십 유지용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원가 절감을 위해 필요하다면 6인치 웨이퍼 공정 등 대구경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잉곳을 웨이퍼로 가공해 에피공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웨이퍼가 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잉곳 생산과정에서 각종 첨가물을 더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박종관 아즈텍 생산본부 공정개발팀 박사는 “고순도 알루미나(Al₂O₃) 외에 인듐·타이타늄 등을 첨가해 잉곳의 강도 및 불량률을 낮추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WPM 지원사격=이처럼 사파이어 잉곳 수요가 높고 개별 업체들의 연구개발이 열기를 띠자 정부도 세계시장 선점 10대 소재(WPM) 과제를 통해 업계를 지원하기로 했다. WPM은 오는 2018년까지 총 1조원을 투입해 세계 시장을 선점할 10대 핵심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사파이어테크놀러지·일진디스플레이·서울반도체·한솔테크닉스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사파이어 잉곳 개발 과제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향후 약 1000억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 받아 대구경 사파이어 잉곳 생산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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