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대우일렉트로닉스 이장희 CTO

“냉장고의 진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네트워크와 맞물려 집 안의 각종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허브 시스템으로 사용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장희 대우일렉트로닉스 본부장(CTO·54)은 대우 냉장고의 산 증인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우일렉 총괄 기술 책임자로 역할이 확대됐지만 엔지니어 시절 대부분을 냉장고와 함께했다. 백색 가전이 전자산업을 주도할 당시 대우전자 연구소로 입사해 동고동락했다.

대우에서 이 본부장의 손을 거쳐 개발한 냉장고 모델만 200개가 넘는다. 지금도 나이든 세대라면 대부분 기억하는 ‘원투제로 냉장고’를 개발한 주역이다. 당시 직접 냉각(직냉식) 방식으로 개발한 이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 때 냉장고 표준으로 자리 잡았던 ‘3면 입체’ 방식도 이 본부장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냉장고를 처음 생산한 게 1960년 중반이었습니다. 당시 금성사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걸로 기억합니다. 이 후 대한전선(대우), 삼성이 뛰어들었습니다. 원투제로 냉장고는 냉동 기능이 경쟁 제품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습니다. 냉장고 기술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원투제로 모델로 기선을 잡은 대우는 400리터급 ‘탱크’ 냉장고로 대우 냉장 기술의 우수함을 마음껏 보여 주었다. 이 본부장은 당시에 브랜드별 기술 경쟁이 가장 치열할 때였다고 기억했다.

“국내 냉장고 역사가 반세기 정도입니다. 외산 제품을 베껴 단순 조립해 생산하던 수준에서 이제는 세계 시장을 주도할 정도로 괄목 성장했습니다.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20년 동안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먼저 냉동 방식이 직접 냉각에서 간접 냉각(간랭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간랭식으로 냉동고에 뿌옇게 성에가 끼는 현상이 없어졌습니다. 냉장고 크기도 200리터에서 800리터급으로 3~4배까지 커졌습니다. 위 아래로 문이 있는 ‘톱-마운트’ 방식에서 ‘양문형’으로 세대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이 본부장은 2000년 초반까지 편의성, 냉각 스피드, 기능 위주로 치열한 냉장고 기술 경쟁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냉장고 성능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입니다. 먼저 단열 성능입니다. 열 교환 능력도 고려 요인입니다. 얼마나 압축할 수 있는 지 여부를 가리는 고효율 기술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계 공학에서 유체, 전자와 전기공학까지 다양한 기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1980년대 이후는 이런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었습니다.”

기술이 보편화하면서 냉장고는 디자인 경쟁으로 넘어갔다고 이 상무는 진단했다. 전자 제품에서 집안 인테리어 제품으로 새롭게 조명 받으면서 시장이 열렸다. 지금은 기술 경쟁이 한풀 꺾인 듯 보인다.

“냉장고에서 이제 기술 진화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 제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항상 진화합니다. 지금 냉장고의 화두는 소비 전력입니다. 친환경이라는 흐름에 맞춰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게 관건입니다. 20년 전과 비교해 소비 전력은 무려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합니다. ‘전기를 안 먹는’ 냉장고는 앞으로 영원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

대우에는 냉장고 연구소 인력을 포함해 200여명의 엔지니어가 포진해 있다. 숙원이었던 매각이 결정돼 막힌 자금에도 숨통이 트여 연구 인력을 더 확충할 계획이다. 이 본부장은 “저전력, 다기능, 홈 네트워크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통해 대우의 앞선 기술력을 보여 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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