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일) `구본준 LG전자호`가 정식으로 출항한다. 지난달 17일 이사회에서 선임된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지휘봉을 넘겨받아 1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LG 안팎 관계자에 따르면 구 부회장은 이미 선임 직후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현장을 챙길 정도로 새 경영계획 수립을 위해 바삐 움직였다.
구 부회장 선임에 대한 주변 반응은 나쁘지 않다. 오너 출신이지만 전문 경영인 못지않은 경영 능력을 가졌다는 분석 때문이다. LG전자 · LG반도체 · LG필립스 등을 두루 거쳐 누구보다 전자 분야 이해도가 높아 `LG전자 구원투수`로 적임자라는 평가다. 실제로 대표 교체 발표 당일 LG전자 주가는 4% 가량 오르며 거의 한 달 만에 처음으로 10만원대를 회복했다.
새 사령탑이 오면서 당장 시장에서는 실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분기를 기점으로 곤두박질친 LG전자 실적이 3분기에도 기존 추정치보다 7~8% 가량 낮은 13조원대로 떨어지고 영업이익도 적자를 낼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적자는 4분기까지 이어진다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더더욱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이래저래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에 회사를 책임지는 모양새가 됐다.
벌써 LG전자 주변에서는 경영성과를 위해 큰 폭의 인사와 조직 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면적으로 회사를 쇄신하기 위한 극약처방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실적이 바닥을 헤매도록 만들었다면 책임을 지는 게 경영의 순리다.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어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새 경영자 입장에서도 자극을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CEO가 바뀐 만큼 나올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들이다.
그러나 이전 사령탑과 확연히 다른 입장이다. 부회장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꼬리표가 바로 `오너 리더십`이다. 오너와 전문 경영인은 같이 경영을 책임지지만 상황은 `180도` 다르다. 제 아무리 능력이 있고 오너 신임이 두터운 전문 경영자일지라도 월급 받은 위치는 어쩔 수 없다.
숫자를 제일 먼저 챙겨야 하고 버는 것 못지않게 쓰는 것도 철저히 챙겨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는 당장 나갈 돈을 줄이는 비용에 더 민감한 게 현실이다. 남 부회장은 본인 위치에서 비용 절감 위주의 경영 스타일로 LG텔레콤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두고 LG전자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경기 불황기에 나름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문제는 과감한 투자보다는 비용절감 위주의 기업 경영이 지속된다면 전반적으로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전과 목표가 불분명하면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결과적으로 기업에 생기가 돌지 않는다. LG전자가 전반적으로 활력을 잃었다는 주변의 평가를 구 부회장은 유심히 봐야 한다.
기업은 캐시카우만 확실하면 다 잘 풀릴 것 같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은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비전을 보여 줘야 하는 데 비전은 투자와 불가분 관계다. 투자는 시쳇말로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을 말한다. 회사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결국 오너뿐이다. 당장 급한 게 실적이지만 비전과 장기 성장성에 맞춘 과감한 투자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앞을 내다보는 큰 그림을 보여 주는 게 급선무다. 누구도 오너를 단기 실적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오너는 전문 경영인과 DNA가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 부회장의 장고와 결단이 필요할 때다.
강병준 생활가전팀장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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