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소설가가 TV 독서관련 프로그램에서 “단편소설이란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얼핏 엿보는 타인의 삶과 같은 것”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장편의 이야기 속에서는 여러 캐릭터의 깊이 있는 모습이 그려질 수 있지만 단편의 이야기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짧지만 임팩트 있게 보여주거나 혹은 흔하디 흔한 풍경처럼 펼쳐진다.
만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1권 이내의 단편을 만날 때면, 유난히 타인의 삶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고양이 장례식`이라는 단편집 역시 이런 특성이 유난히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만화속 세상`에서 단편 연재로 시작한 고양이 장례식은 세편의 단편으로 나눠져 있다. 같이 키우던 고양이가 죽게 되자, 함께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만난 헤어진지 1년이 된 연인과 하루를 같이 보내는 이야기인 고양이 장례식을 시작으로 중년의 부장과 젊은 신입 사원의 유럽여행을 그린 `그 때 불던 그 바람`, 그리고 한가로운 카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오늘의 커피`까지. 이렇게 세편의 단편이 한권에 담겨져 있다.
“누군가 그랬다. 헤어진 연인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반드시 만난다고, 1년 여만에 우리는 장례식에서 만났다. 고양이 장례식에서”
고양이 장례식이라니. 고양이를 조금은 터부시하는 우리네 사정상 왠지 으스스함이 밀려드는 제목이다. 하지만 생각외로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일상의 작은 감정을 잡아낸 소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잘 만들어진 단편 소설집을 한권 읽은 듯한 만족감이 몰려왔다.
1년 만에 만난 헤어진 연인, 사표를 낸 신입사원과 그의 중년 부장 상사, 그리고 한가한 커피전문점의 점장. 이렇게 모든 이야기들이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지만 섬세한 감정선으로 세 개의 단편은 얇게 이어져 있다. 물론 이러한 연결이 억지스럽거나 황망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서로 어느 지점에서 인연이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지 하나 하나 느낄 수 있다.
잊혀진 사랑을, 혹은 가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이미 놓쳐버린 사랑을 하나씩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여정을 잔잔히 읽다보면 깊은 여운이 느껴진다. 홍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력으로 그려내는 그림과 가슴을 깊게 누르는 대사들이 작품의 여운을 더 짙고 깊게 만든다.
“우리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또 있을까?”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이 책이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인쇄와 편집 상태다. 웹툰으로 연재될 때의 빛나던 색감이 책으로 나오면서 많이 사라져서, 너무 어두운 분위기가 됐다. 더욱이 익숙하지 않은 글자 편집(식자)이 책을 읽는데 방해를 준다.
웹툰을 그대로 출판하지 않고 출판에 맞게 재편집한 시도는 높게 평가하나 조금만 더 완성도가 있었다면 더 여운을 깊게 남기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사족을 붙여본다. 물론 사족은 사족일뿐, 가을의 맞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니 잠시 시간을 내어 작가가 선물하는 타인의 삶을 살짝 엿보길 권한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산업진흥원 만화규장각 콘텐츠 기획담당 bride100@parn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