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이 미래 경제를 지배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2010년 글로벌 기업경영 7대 이슈`에서 태양광 · 풍력과 더불어 2차전지 분야에 전 세계 기업들이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고 그와 관련된 주거 · 환경 인프라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신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뚜렷한 추세라고 소개했다. 일본의 한 경제지도 최근 에너지저장장치를 우리가 꿈꾸는 녹색미래를 이루는 주요 인프라로 지목하고 관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일본기업들의 노력을 소개했다.
화석연료가 지난 수백년간 전 세계의 성장을 이끌어왔다면 이제는 다양한 재생에너지원이 그 자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에 의해 생산된 전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지는 현재 산업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을 산업혁명의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 없이는 녹색미래 없다=화석연료 시대에서 전지시대로의 전환. 최근 에너지 분야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를 표현하는 말이다.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에너지저장장치로서 전지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이 표현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세계 전력 수요는 2010년 21조㎾에서 2020년 27.5조㎾h로 매년 약 2.7%씩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 전 세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010년 2%에서 2020년 7.8%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동안 세계 풍력발전 용량은 172GW에서 709GW, 태양광은 22GW에서 16GW로 각각 증가하게 된다.
전력 수요의 증가에 따라 발전용량의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불행하게도 기존 발전설비의 활용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또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기존 전력계통과의 연계문제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저장장치는 우리가 안고 있는 이러한 고민거리를 한 번에 날려줄 최적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는 생산된 전력 에너지를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 신재생에너지 활용도 제고 및 전력공급 시스템의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자연조건에 따라 생산되는 전력의 품질에 큰 차이를 갖고 있는 태양광 ·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어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자동차산업의 구조를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는 전기자동차의 핵심부품으로서도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에너지저장장치 없는 미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에너지저장 시장 패권을 잡아라=우리나라는 IT용 소형 리튬 2차전지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일본을 맹추격해 현재 리튬 2차전지 분야에서 기술력과 출하량 부문에서 세계 2위 국가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일찍부터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의 판단이 가져온 쾌거다.
최근 미국 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LG화학, 세계적인 리튬 2차전지업체로 성장한 삼성SDI와 그 투자기업 SB리모티브, 그리고 2차전지의 핵심소재인 분리막 제조 기술을 확보한 SK에너지 등 다양한 기업이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중국과 미국 등 경쟁국의 관련 분야 육성 의지가 크고 투자 규모 또한 우리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에너지저장산업의 육성을 위해 펀드를 조성하는 등 수조원의 예산으로 산업체 지원에 나서고 있다. 특히 리튬전지 생산산업의 기반이 약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공장 건설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또 스마트그리드사업에서 에너지저장 관련 초기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자동차용 리튬전지에 대한 R&D와 보급사업을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독일은 또 프랑스와 양국의 전력회사 · 전지업체 · 태양광 발전설비업체 · 연구소 등을 참여시킨 솔리온 프로젝트를 추진해 에너지저장용 리튬이온전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75개 실증사업을 거쳐 2012년경 사업화한다는 목표다.
이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일본은 신에너지개발기구(NEDO) 주도하에 2차전지 개발 로드맵을 작성해 기술개발과 정책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 NGK가 나트륨황(NaS)전지를 사업화 했고 미쓰비시 · 엘리파워 · GS유아사 등이 리튬이온전지의 개발을 진행해 큰 성과를 거뒀다.
◇새로운 격전지, 대용량 전지=자동차용 배터리가 최근 2차전지 분야의 화두이긴 하지만 사실 전 세계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대용량 전지 분야다.
녹색성장위원회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소형 2차전지 시장은 2.3배(220억달러) 증가할 전망이나, 중대형 전지 시장은 19.3배(559억달러)나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대형 전지 시장은 현재 일본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한 · 중 · 미 · 독이 추격하는 구도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품 수요처와 연계한 보급 목표와 개발계획 등 중대형 2차전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정책 대응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R&D 투자도 경쟁국 정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에너지저장장치에 대한 R&D 계획은 2009년까지 전무한 상황이었다가 2010년 들어 겨우 2개 사업이 추진됐다.
각 장치별 기술개발 현황을 살펴보면 현재 국내 중대형 에너지저장장치 관련 기술은 이제 개발에 막 들어간 단계로 볼 수 있다.
에너지저장장치 기술은 2차전지 외에도 압축공기 에너지저장(CAES), 양수발전, 플라이휠, 초전도 에너지저장(SMES) 등 다양하지만 전력 저장이 가능한 대용량 2차전지 시스템으로 한정하면 납축전지, 리튬이온/폴리머 전지, 플로우 전지, NaS전지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납축전지를 제외하고는 상용화된 전력저장용 전지는 없으며 리튬전지와 플로우 전지는 기술 개발 중이고 NaS 전지도 고려 중이다. 납축전지는 기술 성숙도가 타 전지에 비해 높고 널리 상용화되어 있으나 수명과 환경규제 등을 해결해야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인 리튬전지는 소형은 상용화된 기술이지만 중대형 전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아직 연구단계 수준에 머물고 있고 무엇보다 가격, 안전성 등을 해결한다면 출력과 에너지 밀도가 높아 상당히 매력적인 전지이기 때문에 투자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소형 리튬전지의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대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중대형 리튬전지는 선진국 대비 경쟁력이 충분하다.
플로우 전지는 대용량이 유리하며 출력과 용량을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술로써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적인 면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상용화에 근접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2009년 5㎾급 시제품 전지를 개발했으며 향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에너지 밀도가 향상된 플로우 전지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대용량 전지 시스템 중에서는 단기간에 기술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전지로 일부 대기업에서 사업화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NaS 전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상용화에 성공한 대용량 전지로써 에너지 밀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며 고온에서 작동하는 전지시스템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자체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