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자회사를 보유한 금융지주사의 IT관계자에게 `IT조직 통합을 통해 얻은 구체적인 효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 관계자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눈에 띌 만한 특별한 효과는 없다”고 답했다. 초기에 의도했던 비용 절감이나 IT전문성 및 역량 제고 등의 성과가 미미하고, IT셰어드서비스센터(SSC)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계열사 IT조직을 IT자회사로 통합한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런 평가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설립된 자회사는 계열사 업무만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IT역량이 높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립된 IT자회사 역시 일정 수준의 마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공동구매 등 다양한 노력을 강구함에도 불구하고 전체 지주사 관점에서 보면 비용절감 효과도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다양한 효과를 기대하며 통합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이들조차 구체적인 효과를 제시하기보다 추상적인 기대효과만 늘어놓고 있다. 막연히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거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주장만으로는 금융지주사의 IT자회사 전략이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금융지주사별로 IT자회사 설립 붐이 일고 있는 지금 과연 금융지주사 IT자회사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일까.
◇전 금융권에서 IT자회사 강화 추진=국내 금융권에서는 2000년 초반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은행(옛 한빛은행)과 경남은행 IT조직을 우리금융정보시스템으로 통합했다. 우리금융지주는 현재 우리투자증권 IT조직에 대한 통합 작업을 추진 중이지만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이미 하나HSBC생명보험, 하나캐피탈 IT조직을 하나INS로 통합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진통 끝에 하나대투증권 IT조직마저 통합을 완료했다. 올 하반기엔 가장 큰 규모인 은행 IT조직에 대한 통합이 추진될 전망이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이번 통합은 운용인력이 대상이다.
올 초 차세대 프로젝트를 끝마치고 최근 최고정보책임자(CIO) 교체를 단행한 국민은행은 하반기부터 지주사 차원에서 IT통합에 대한 컨설팅과 전략수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KB금융지주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다른 지주사와 달리 은행 주도형으로 통합이 진행될 전망이다.
한화금융그룹은 한화증권, 한화손해보험(제일화재 인력 포함), 대한생명 IT조직을 한화S&C로 통합했다. 최근엔 한화증권이 인수한 푸르덴셜투자증권 IT조직의 통합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IT인프라만 우선 통합한 신한금융지주,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KDB생명(구 금호생명) 등을 거느린 산은금융지주, 지주사 설립 예정인 IBK금융그룹 등을 중심으로 IT조직 통합과 아웃소싱에 대한 내부 검토가 진행 중이다. 올 연말 지주사를 설립할 예정인 메리츠금융그룹은 2년 전 화재와 증권을 중심으로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를 설립한 바 있다.
◇IT조직 통합으로 기대하는 효과는=금융권이 IT조직 통합을 통해 얻고자 하는 기대효과는 △비용절감 △시너지 효과 및 업무생산성 향상 △IT 전문성 제고 △지주차원의 관리효율성 향상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효과인 비용절감을 살펴보자. 여기엔 IT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에서 IT는 비즈니스의 핵심이 아니라는 논리가 함께 작용한다. 아웃소싱은 핵심이 아닌 업무를 과감하게 외부 업체에 위임하는 데 있다. 서비스수준계약(SLA)를 통해 고정된 인건비를 변동비화하고 서비스 단위의 과금체계를 기업 IT업무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비용절감의 대상에는 단지 인건비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분산돼 있는 IT인프라를 한 곳으로 모으고 공유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함께 사용하거나, 사무실이나 전산실 같은 물리적 공간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다.
비용절감 다음으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시너지와 생산성 향상 효과다. 여러 계열사의 IT조직을 통합한 전문회사를 통해 그룹 전체에 폭넓고 전문적인 서비스 제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또한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에 따라 금융업종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즈니스 부서에 보다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협업이 가능해 그룹차원에서 업종 간 시너지 효과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주사 입장에서는 매트릭스화를 통해 IT부문의 관리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기업 전체의 운영 전략도 보다 손쉽게 수립할 수 있다. 금융지주 CIO가 IT자회사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하나금융지주의 경우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주사 전체에 대한 일관된 IT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IT 전문업체를 통한 전문 서비스와 품질 향상도 기대해볼 수 있다. 제도 변화에 따른 새로운 파생상품 등은 기존 시스템으로 대응하기가 힘들고 개발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전문 IT업체는 여기에 소요되는 새로운 요소기술과 인프라 등을 갖추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 IT부서에서는 힘들었던 일들이 가능해질 수 있다.
물론 통합 초기부터 다양한 서비스와 품질 향상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견해다. 하지만 내부 인력이 아닌 계약에 기반을 둔 외부 인력들로부터 서비스를 받게 되면 서비스의 품질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한 표준화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전달되는 현업의 요청사항이 표준화, 정형화돼 IT부서 입장에서도 업무 처리가 편해질 수 있다는 점도 기대해볼 수 있다.
지주사 내의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기존엔 접해보지 못했던 업무들을 접할 기회가 생기고 향후엔 외부 사업을 통해 전문 IT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IT인력들의 역량을 배가할 수 있다는 것도 IT조직 통합의 이유 중 하나다. 통합 후 수년간은 기존에 하던 업무가 중심이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직순환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강력한 IT지배구조의 확립, IT인력의 고령화 문제, 승진정체 등 지주사 입장에서 골치 아팠던 IT 관련 이슈들을 IT통합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현재에도 꾸준히 IT조직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다.
◇베스트 프랙티스가 없다=이처럼 금융권 IT조직 통합이 전반적인 추세가 되고 있지만 일부 CIO와 상당수의 IT실무자들은 제 3의 업체를 통한 아웃소싱이 아닌 기업 자회사로 인력을 모으는 형태의 IT아웃소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소속이나 신분에 대한 불만, 급여와 복리에 대한 우려, 무엇보다 통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불투명하며 검증된 바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IT 실무자들은 복리 후생과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표하고 있다. 통합의 목적이 중복된 기능을 제거하는 비용절감에 있다면 인력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지 감축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 지주사는 통합 후 3~5년 동안 고용보장을 한다고 하지만 이는 안정화 기간 동안 인력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게 많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3년 계약 때문에 당장 이직이 힘들고 3년 후에 신분과 업무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통합이 예정된 IT부서 직원들 중에는 영업지점으로의 보직변경 신청에 대비하거나 아예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는 인력들도 있다”고 말했다. 통합을 앞두고 있는 한 증권사 CIO역시 “직원들은 3년이라는 보장된 시간동안 계속 근무를 할지 아니면 이직을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급여 역시 통합 초기엔 기존과 큰 차이 없이 유지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승폭이 작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자신이 오랜 기간 근무하던 회사와 IT서비스 계약을 맺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업 직원들도 업무 신속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IT부서가 분리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IT기획 기능까지 IT자회사로 통합되는 경우엔 상품기획 단계에서 IT부문이 제외되고 철저하게 서비스만 제공하는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웃소싱을 통한 비용절감도 그 효과는 어떨까. 물론 금융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IT자회사로 IT인력의 소속이 바뀌기 때문에 인건비 측면에서는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프라 공동 활용의 경우 예상보다 그 적용 대상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화증권 관계자는 “인사나 급여,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등은 공동 활용이 가능하겠지만 증권이나 보험에 관련된 특화 업무는 그 회사 인력과 시스템 외에는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RP 통합도 쉬운 작업은 아니며 실제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고 그는 설명했다.
금융권의 IT업무는 특수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의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기획 등의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보직 순환도 힘들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외국계 컨설팅업체의 한 전문가는 “국내 금융권의 IT아웃소싱은 효율성을 따지기 보다는 입김 센 임원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이에 따라 아직까지 금융권 IT통합이 의도했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결국엔 IT인력만 한 회사로 모아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현가능한 분명한 목표 정립이 우선=이렇듯 많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 IT인력 통합을 통한 IT아웃소싱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지주사 설립 얘기가 나오고 있는 부산은행이 IT자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금융지주사들은 충분한 공감대 없이 통합을 추진했기 때문에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는 직원들에게 통합을 통한 명확한 비전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얘기와 같다. 내부적으로 통합 이후의 비전이 공유되지 못한다면 IT통합이 성공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금융권에서 IT자회사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이를 통해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물론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시행착오가 일어나고 있고 관계자들의 고심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뚜렷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IT조직을 통합하면 다양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이를 추진한다면 IT통합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특히 IT자회사의 목적을 성장이나 외부사업을 통한 수익 등에 두는 경우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따른다. 금융 IT자회사들이 대형 SI업체와 같이 경쟁력을 가진 전문업체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규모의 경제 문제도 있지만 기존 계열사 IT인력들 외에 역량 있고 젊은 IT인력들을 수혈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비스 품질 제고나 비용절감, 업무생산성 향상 등 통합을 통해 기대하는 여러 효과 중에서 실현 가능하고 꼭 필요한 목표에만 집중해 이를 중심으로 IT자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지주사 내에서 IT자회사가 제 자리를 찾은 후에야 IT SSC로서의 자리매김 등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통합의 목적과 형태는 각 회사별로 다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기간의 통합효과에만 급급하다 보면 장기간의 통합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것을 지주사 경영층과 실무자들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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