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밸리]공단에서 디지털 밸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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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구로공단 여성근로자

G밸리의 역사는 1964년 출발한 ‘구로산업단지’(구로공단)에서부터 시작한다. 섬유와 가발, 봉제 등 경공업산업에 수많은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종사한 구로공단은 수출로 가난을 벗어나려했던 그 당시 한국 산업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G밸리는 첨단 IT 기업과 개성넘치는 젊은이들이 희망을 키우는 곳으로 변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수출활로를 개척하던 60∼70년대 구로는 국가 수출액의 10%를 담당하던 핵심 산업단지였다. 국가 수출액이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넘어서던 1977년에는 1억달러의 수출을 기록했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로는 업종전환이 이뤄진다. 10년간 구로공단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던 섬유·봉제 분야가 사양산업의 길을 걸으면서 전기·전자 분야가 급부상 했던 것. 80년대 중반에는 전기·전자 업종의 수출액의 구로 전체의 46%를 차지했었다.

2000년 12월, 구로공단은 30년간 입어온 ‘제조업’이라는 낡은 옷을 버리고 ‘지식서비스 산업’이라는 새옷을 갈아입게 된다. 산업단지 구조고도화의 일환으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개칭되고 디지털 시범단지로 지정 된 것. 그후 10년간 G밸리에는 전통 제조업 대신 웹, 모바일, 콘텐츠 등 지식서비스 기반의 기업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춰왔다.

2000년도 초반 IT 거품 붕괴와 함께 강남 테헤란벨리의 수많은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한 때 G밸리는 ‘실패한 IT 기업의 유배지’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배지가 아닌 새로운 도전과 성공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기업들이 G밸리를 찾고 있다. 입주한 벤처기업의 수도 테헤란밸리를 넘어서고 있다. 여러 협단체와 정부산하 연구기관 등도 밀집해 있어 산학연관 시너지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곳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9500개의 기업 입주해 있고 이중 7500여개 기업이 지식서비스 사업을 펼치며 매달 12만명의 벤처인들이 1억 달러의 수출을 만들어 내는 곳이 지금 G밸리의 모습이다. 공장보다 오피스 건물이 더 많으며,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한다. 최근에는 유비쿼터스와 문화가 결합된 융복합형 IT 문화산업 단지를 목표로 제2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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