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대항해 시대] <1부-8>상생문화 정립하자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간 온도(실적) 차이가 큽니다. 대·중소 벤처기업 수익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입니다.”-서승모 전 벤처기업협회장(작년 말 기자간담회)

 “지금까지 중소·벤처기업은 대기업과 협력에서 목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는 창조적 명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지난달 취임 인터뷰)

 두 전·현직 벤처협회장의 말은 여러 뜻을 내포했다.

 우선 한국에서 벤처가 갖고 있는 기회 요인이다. 한국 벤처는 매우 좋은 주변 여건을 갖췄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에 세계 최고의 IT 대기업이다.

 특히 후자는 중요하다. 벤처도 기업인 이상 시장이 필요하다. 이들 대기업은 중요한 수요처 역할을 맡는다. 날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 개발 요구를 받고 있는 대기업은 규모의 한계로 인해 모든 기술을 직접 해낼 수 없다. 대기업이 만드는 기술에 발맞춰 함께 갈 수 있는 기업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벤처가 하는 것이다. 벤처 입장에서는 예정된 수요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큰 이점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곧 위기 요인으로도 다가온다. 벤처기업으로 특정 대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제품과 기술만 개발하게 되고, 이는 벤처에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의성’을 상실하는 요인이 된다. 밤낮을 잊는 자체 연구개발(R&D)이 아닌 대기업에서 요구한 규격에 맞춰 좀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데 매진할 뿐이다.

 이는 여러 문제로 이어진다. 대기업은 제품의 단가를 낮추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해댄다. 특히 지난해와 같은 경기침체에서는 그 수위가 훨씬 높다. 이는 협력 벤처기업에는 수익성 악화로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추가 R&D 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선다. 인건비를 아끼게 되고 이는 고급인력이 벤처기업에 들어가려는 것을 막게 한다.

 기업이 커 나가기 위한 선순환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벤처 생태계에서 대기업의 역할은 너무 크다. 이들 대기업이 벤처기업과 손잡고 상생 발전하는지는 그래서 중요한 문제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대기업은 협력 벤처기업을 단순히 하도급업체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는 협력 벤처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기업도 중요한 기술 파트너를 잃게 된다.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이 이슈다. 기술 급변시대 기업은 경쟁력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외부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부도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라는 것. 이들 외부 협력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 제품 또는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좌우된다는 설명이다.

 이들과 함께 공동의 파트너로 지속적으로 신기술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력 벤처를 공동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기술은 충분한 값어치를 인정하고 이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를 발판으로 협력 벤처는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다.

 물론 벤처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과 손잡았다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국내에는 대기업 납품 자격 획득 후 오히려 기업이 크게 흔들리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제품을 더 저렴하게 공급하는 데 목표를 두고, 이것이 오히려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경우다.

 벤처는 언제나 벤처정신인 ‘고위험 고수익(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벤처가 안주하는 순간 더 이상 벤처가 아니다. 벤처정신을 발휘해 언제나 신기술 신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회사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기술 트렌드에 맞게 시장을 미리 보고 대비해야 한다. 한시라도 이에 태만하면 그 기업은 도태된다.

 일례로 아이폰 등장과 함께 갑작스럽게 커지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벤처기업의 경쟁력 차이는 크게 나타난다. 이를 예견하고 이미 관련 플랫폼에 맞게 인력을 확보해 기술개발한 업체들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인 상태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상생이 강조된다. 대기업은 미래를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바탕으로 충분한 조사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이를 벤처기업과 적극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보 유출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정보는 널려 있는 오픈 시대에 살고 있다. 먼저 그 정보를 캐치,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룡으로 표현되는 대기업이 그 역할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기업은 상생협력의 자세로 확보한 정보를 벤처와 공유함으로써 시장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상생 문화 개척하는 대기업

 대·벤처기업 간 상생 문화는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서서히 확산하는 추세다.

 각계의 지속적인 요구와 대기업의 상생에 따른 시너지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전문가들은 이들 대기업의 변화가 큰 흐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삼성·LG전자 등 국내 주요 38개 대기업의 중소기업 상생협력 지원 자금 규모는 6조2800억원으로 파악됐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조사 결과로 기업별로 평균 1665억원의 상생 자금을 지원했다. 전년도에 비해 33%가량 늘어났다. 주요 업체별로 보면 LG전자는 협력사를 대상으로 200억원의 직접 대출과 2000억원 규모의 연계 대출 제도를 시행했다. GS그룹 9개 계열사도 1000여개 중소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상생펀드를 마련하고 실질적인 지원에 나섰으며 SK그룹도 1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자금난을 겪는 중소 협력사를 지원했다.

 이 같은 자금 지원 외에 다양한 기술 지원과 컨설팅을 거쳐 협력사들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협력하는 대기업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3월 ‘협력사 경영컨설팅단’을 구성한 삼성전자는 모기업의 경험과 지식을 중소기업에 전달하고 있다. 인사·재무·개발·제조·혁신 분야의 전문 임원 출신으로 구성된 컨설팅단은 삼성전자의 시스템 경영을 협력사에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말에는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벤처기업을 적극 협력사에 추가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본격화했다. 협력사 진입에 따른 장벽을 낮추고 문호를 개방하는 혁신적인 협력사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이의 일환으로 품질 혁신, 기술개발 지원, 원가절감 방안, 협력사 임직원 역량강화 등 과제별로 혁신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조성래 삼성전자 상생협력실 상무는 “상생 협력의 골자는 협력사 경쟁력 강화”라며 “협력사 경영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ERP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수주에서 제품 출하에 이르는 프로세스 개선을 도울 방침”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협력사를 대상으로 무상 전문교육, 6시그마 컨설팅, 인력 지원, 친환경 활동과 같은 가치 공유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미 러닝센터는 협력사 전문 교육기관으로 활용 중이다. 친환경에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협력사와 친환경 재료·부품의 사용을 위해 부품 공급 단계에서 친환경을 고려한 부품관리체계(ECO-SCM)를 구축해 운용하는 것도 좋은 사례다. 협력사에 친환경 인증서를 발행하는 한편 주요 협력업체에는 주기적인 환경 안전점검이나 환경 안전평가 컨설팅을 수행한다. LG전자의 이런 친환경 활동은 중소기업이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준다는 평가다.

 한국전력이 도입한 기술자료임치제도 관심이다. 대기업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국내에 기술자료임치제 확산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다. 기술자료임치제는 협력관계인 두 회사가 합의 하에 기술자료를 특정 장소(대·중소협력재단)에 보관하는 것으로 이로써 개발사인 중소벤처기업은 개발사실을 입증해 기술유출을 막을 수 있고, 대기업은 협력사가 폐업·파산했을 때 기술관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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