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제조업체 사장을 해오면서 이렇게 힘든 해는 처음입니다.”
지난달 27일 도쿄 남동쪽의 중소 제조업체 집적단지인 오다(大田)공업지구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산와전기 본사 겸 공장. 지난 1984년 선대 창업자인 아버지로부터 사장직을 이어 받은 뒤 줄곧 회사를 이끌어온 하야시 데쓰오 사장은 대뜸 “사장을 하면서 이렇게 회사가 어려울 때는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사는 각종 컴프레서와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진공·압력 스위치를 주로 생산한다. 지난 2008년(2008년 4월 1일∼2009년 3월 31일 회계기준) 6억엔의 매출을 냈으며 이젠 그마저 줄어들었다.
하야시 사장은 “상시거래처가 400∼500곳 되지만, 지난해부터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져 최근 3년간 확보해둔 3000만엔의 유보 자금으로 적자를 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산업 경쟁력의 뿌리인 중소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요즘 일본 경제는 소니의 쇠락, 도요타와 혼다의 잇따른 리콜 사태로 그야말로 최악의 경제적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날만 새면 사라지는 중소기업과 자국 내 대기업에 안주해온 중소 제조업체들의 대외 경쟁력이 추락하면서 산업 근간인 중소기업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근원적인 고민에 빠졌다.
이런 고민은 도쿄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40∼50분 떨어져 있는 오다공업지구에 들어서면 한눈에 확인된다. 1900년대 초 도쿄 중심지보다 훨씬 저렴한 땅값을 이유로 제조공장이 몰려들고, 중소기업 성장의 상징처럼 부각되면서 이곳의 입주기업 수는 한때(1993년) 9890개에 달했다. 그런데 최근 조사(2008년) 결과, 입주기업 수는 4351개로 15년 만에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2005년 조사 때의 4778개보다 10%가량 감소한 수치다. 히로시 오하시 오다산업진흥협회 팀장은 “그나마 4351개 기업 중 절반이 종업원 3명 이하며, 80%가 종업원 10명 이하 기업들”이라며 “가족 중심 경영으로 영세하다보니, 예전에는 전문성을 높이 평가받았으나 요즘처럼 대량생산 체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대두됐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명성을 달리던 오다가 이렇게 왜소해진 것에는 최악의 불경기 외에도 기업 간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후계 경영 부재 등 세 가지 문제가 복합됐다”고 분석했다.
나고야시 기후현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 자리잡은 미라이공업 본사. 전 직원이 한 몸이 돼 회사 내 혁신 활동으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기업이다. 몇 년 전 한국 방송에도 소개됐다. 이 회사는 몇 년째 매출 정체를 겪다가 2008년에는 내림세로 꺾였다. 지난달 28일 이 본사 공장에 들어섰다. 여느 공장처럼 바쁘게 돌아가지만,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는 없었다. 16년 전인 1994년 처음으로 매출이 200억엔대를 돌파한 후 매년 조금씩 매출이 늘었지만, 한번도 300억엔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최악의 불황 앞에 ‘직원 지상주의 기업’ 상징의 날개도 맥없이 꺾였다.
이 회사의 총무과 직원 스기야씨는 “영업이익이 10%는 넘어 경기 악화가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자본금만 70억6786만엔에 달하는 이 기업이 지금과 같은 매출 곡선에 전기공사 기기, 스위치 박스 등 일부 부품에만 주력 제품을 의존해서는 200억엔대를 돌파할 때의 성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게 분명해 보였다.
기타바야시 히토시 일한산업기술재단 프로젝터 매니저는 “일본 중소 제조업의 상징어인 ‘모노즈쿠리(창조적인 제조업)’도 품질에만 모든 것을 건 나머지, 제품 혁신과 마케팅, 신사업 창출은 등한시해 왔다는 점에서 궤도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중소기업들은 ‘보장된 내수’와 ‘원천 기술’로 일본 산업과 경제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지난 연말을 전후해 최다 기업 도산과 채산성 악화로 아우성인 일본 중소기업들의 상황은 그동안 글로벌 경쟁과 혁신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결과가 드러난 성적표라 할 수 있다.
도쿄(일본)=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전자 많이 본 뉴스
-
1
내년 '생성형 AI 검색' 시대 열린다…네이버 'AI 브리핑' 포문
-
2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3
LG이노텍, 고대호 전무 등 임원 6명 인사…“사업 경쟁력 강화”
-
4
AI돌봄로봇 '효돌', 벤처창업혁신조달상품 선정...조달청 벤처나라 입점
-
5
롯데렌탈 “지분 매각 제안받았으나, 결정된 바 없다”
-
6
애플, 'LLM 시리' 선보인다… “이르면 2026년 출시 예정”
-
7
'아이폰 중 가장 얇은' 아이폰17 에어, 구매 시 고려해야 할 3가지 사항은?
-
8
美-中, “핵무기 사용 결정, AI 아닌 인간이 내려야”
-
9
삼성메디슨, 2년 연속 최대 매출 가시화…AI기업 도약 속도
-
10
美 한인갱단, '소녀상 모욕' 소말리 응징 예고...“미국 올 생각 접어”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