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에게 듣는 새해새설계/나경환 생산기술연구원장

 

“작년 설립 20주년을 맞으며, 어엿한 성년이 된 생산기술연구원 수장으로서 태어나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20년, 100년을 향해 뛸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이하 생기원) 나경환 원장(53)은 20년 전 설립 원년 발기 멤버로 출발, 중간에 과학기술혁신본부·한국과학재단에서 일한 시간을 빼고는 오롯히 20년을 생기원에 바쳤다.

그리고, 성년을 기관장으로서 맞았다. 생기원이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그의 역할도 컸지만, 어찌보면 일생을 바쳐 책임져야 할 자식 같은 기관이기도 하다. 나경환 원장은 “지금까지가 이렇게 성장해 왔다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고, 보여주는 시기였다면, 성년인 이제부터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보다 많은 기업들이 생기원 덕분에 성장의 기회를 잡고,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가 그의 말처럼 ‘일생 중 가장 바빴던’ 이유는 생기원 인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작업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생기원은 다른 정부 출연연구소와 마찬가지로 기본 연구개발(R&D)이 중심이었다. 자연히 연구원들도 생산기술 심화연구 쪽에 전체의 80∼90% 가량이 배치돼 움직여왔다. 성과를 내야하는 부담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과제와 방향에 따라 연구작업에만 몰두하면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나 원장은 이 구조를 ‘수술대’에 올렸다. 성년으로 몸이 굳기 전에 새로운 산업구조가, 시장이 원하는 조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도 있었다. 그는 심화연구 쪽의 인력들을 과감하게 실용화 연구 쪽으로 돌렸다. 생기원의 R&D 결과는 궁극적으로 기업으로 가서 매출로 연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철학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

심화연구를 하는 연구원이 2∼3년씩 연구한 실적을 갖고, 기업과의 접점인 실용화 지원 쪽으로 가 그것을 기업에 전수하고, 실용화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봤다. 그리고 상용화·실용화된 기술이 2∼3년간 기업에 안착되고 나면, 그 연구원은 다시 ‘실탄’을 만들기 위해 심화연구 쪽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본래 뜻이다.

나 원장은 “앞으로 심화연구 인력과 상용화 지원 인력의 비중을 50대50 정도로 균형을 맞추는 데 까지 변화의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21살 생산기술연구원의 새해 아침은 이렇게 열렸다.

변화 속에서 건강해지고, 건강한 조직과 생명력을 우리 산업의 기초 체력과 경쟁력으로 이어가기 위한 전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 기술 지원 허브로서의 역할을 선포하고 뛰셨는데, 그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는?

▲중소기업을 위해 일을 많이 벌이는 기관이라는 평가보다는, 기업이 진짜 필요로 하는 기술과 일을 상시적으로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20년전 설립 당시에는 모든 것이 너무 열악해서 간단한 측정이나, 검사만으로도 기업들로부터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기업들은 생기원이 ‘기술애로 통합 솔루션 제공자(Technology Solution Provider)’로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고, 우리도 그렇게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천 같은 경우도 실험실의 장비를 모두 꺼내, 한군데 모아놓고 기업들이 언제든 들어와서 연구하고, 시험할 수 있도록 바꿔놓았고, 생기원 모든 지역센터가 현장 밀착형 기업 지원 조직화되도록 바꿔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젠 “생기원 장비에 대한 접근은 정말 쉬워졌다”는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글로벌 중견기업 육성이 핵심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생기원이 추진하는 전 기업 지원 사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짜서 효율성과 성과를 높이는 ‘토털 패키지 지원서비스’를 제공해 나가야 합니다. 부문별 지원 사업들을 종합해 단순 기술 상담은 물론 상용화,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제대로 된 원스톱 서비스를 실시하겠습니다.

―심화 연구 인력과 실용화 지원 인력의 비중 조정이 특히 인상적인데, 관련 후속 과제는?

▲이들 두 부문간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은 벌써 10여년전 일본 프레스 제조사를 찾았을 때 인상 깊게 배운 내용이 기초가 됐습니다. 당시 그 일본회사 연구소와 생산라인은 부서간 트러블이 대단했습니다. 연구소는 연구 결과를 내놓지만, 번번히 생산라인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 사장은 연구소 부문 직원을 곧바로 생산부분으로 보내, 직접 시제품을 만들어보도록 했습니다. 연구소는 연구쪽 시각에 매달려 생산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생산은 연구 쪽을 무시하고 폄하해 왔던 구조가 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용화 지원 업무를 해 본 연구원은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고 심화연구 쪽에 갈 수 있으며, 심화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실용화 지원업무를 해보면서 어떤 연구가 필요한지 깨닿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실험이 정착되기 위해선, 연구원들의 희생이 분명이 따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도기 때문에, 연구 안정성도 약간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용화 지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관련 성과를 확산시켜 나간다는 반드시 안착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부분이 있다면?

▲연구원 1인과 5개 중소·중견기업이 화학적으로 뭉쳐서 사업·제품 성공까지 그야말로 끝을 보는 ‘1인 5사’ 시스템을 가동하겠습니다. 국민소득 3만∼4만달러로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중소·중견기업, 그 중에서 중견기업을 다수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산업의 허리를 강하게 만들고,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기원 ‘1인 5사’ 시스템을 통해 기술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발굴해내고, 지금 도와주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는 기업을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우리 국가 규모에 맞게 얼마나 빨리 중견기업 수준으로 키우느냐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산업·경제력 수준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일이라고 봅니다. 세계적인 중견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생산성 전반의 향상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생산성향상추진단을 구성,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추진단은 앞으로 생산이 얼마만큼 빠르게, 질좋게, 경제적으로 이뤄지는가를 분석하고, 개선방향을 내놓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에너지를 얼마나 덜쓰고, 깨끗하게 생산해내느냐하는 ‘그린 생산성’도 앞으로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높여가야 할 것입니다.

―임기가 오는 9월까지인데, 임기 마지막 해에 특별히 세운 구상이 있다면?

▲지난해까지 제반 하드웨어를 정비하는 데, 주력해 어느 정도 틀을 완성한 만큼 올해는 이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구체적인 성과를 맺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기업들과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확보해 생기원의 비전과 활동을 설명하고, 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지속적으로 생기원의 진로를 그 쪽으로 맞춰갈 것입니다. 생기원의 법적 모태가 됐던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이 진행된지 꼭 20년 만에 우리는 세계 수출 9위, 400억달러 무역 흑자라는 고지를 밟았습니다. 그 역사와 함께 해 온 생기원이 더욱 미래지향적으로, 기술입국의 선도기관으로 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새겼습니다.

대담=홍승모 전자담당smhong@ 정리=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박스/생산기술 경쟁력 제고 ‘총력’

LCD TV, 휴대폰, 선박, 자동차 등 세계 일류 제품 중 주조, 금형, 용접, 소성, 열처리, 표면처리 등 이른바 6대 생산기반 기술 공정을 거치지 않은 제품은 단 하나도 없다.

완제품의 세계 시장 경쟁력이 이들 6대 생산기반 기술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생산기반기술이 제품의 경쟁력과 등치되는 만큼, 6대 생산기반 기술을 지속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완제품 경쟁력도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와 생기원은 이들 6대 생산기반기술을 ‘산업 뿌리기술’로 명명하고, 올해 상반기안에 종합적인 육성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나경환 원장은 “지금까지는 부품소재산업이라고 말해 왔는데, 앞으로는 소재부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것 같다. 제조 순서로 봤을 때도 소재가 있고, 그것으로 특성에 맞는 부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며 “소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앞으로 우리 국가산업 발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 소재산업이 결국은 생산기반기술·공정기술과 맞닿아 있다”며 “소재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전산업의 기초인 ‘뿌리기술’을 높이는 것이고, 결국 공정기술을 통해 소재기술을 더욱 고도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 원장은 “지금까지는 2등만 해도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진짜 리딩국가로 가려면 더 기술적으로 밑바탕까지 내려가서 소재와 공정기술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얼마 전 한 대기업 연구소장을 만났을 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기술적으로 전혀 모자랄 것이 없을 것 같은 그 대기업의 연구소장이 나 원장에 한 주문이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도금액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도금은 초정밀 제품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기반 기술이다.

나 원장은 “소재가 바뀌면 뿌리기술도 진화, 발전해야 한다”며 “정부가 내놓을 ‘뿌리산업육성전략’을 실천에 옮기는데 핵심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소박스/‘출연연 거버넌스 개편’에 대한 나 원장의 생각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출연연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계속 변화·발전할 역량과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방침에 현직 원장으로서 어떤 식의 발언을 하든 부담스러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나 원장은 누구보다 오랜 시간 출연연에 몸 담았던 인연과 원칙에 따라 나즈막히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의 연구환경을 보다 잘 만들고 변화시켜서, 투입되는 연구비의 성과를 높이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며 “그러한 환경을 이번 기회에 어떻게 만드느냐가 진짜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 원장은 “산업과 연계된 출연연의 성과는 논문 실적이나, 내부적 경영성과로 따져질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기업에 얼마나 도움을 주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출연연과 소속 연구자가 어떤 연구를 해야할 것인지 정확히 깨닿고, 그것에 집중해서 이전 보다 좋은 성과를 얻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돼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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