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 회장을 지척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다. 물론 순전히 ‘업무적인’ 만남이었다. 첫 만남은 2008년 4월 김용철 변호사 폭로 사태와 맞물린 기자회견 자리다. 이 회장은 당시 사회적으로 불거진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한 과실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은 물론 공직에서 완전 사퇴했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이 회장은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남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가전·멀티미디어 전문 전시회 ‘CES 2010’ 현장이었다. CES 방문은 사면 후 첫 이 전 회장의 공개적인 나들이였다. 삼성 부스를 찾은 이 회장은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삼성 모든 부스를 돌면서 주요 제품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의 만류에도 2시간 가까이 전시장 곳곳을 꼼꼼히 챙겼다. 당분간 경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이 무색할 정도로 열정과 관심을 보였다. 이날 있었던 이 회장 발언과 모습은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이미 알려진대로 이 회장이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데는 삼성 부스를 방문 예정인 IOC 위원을 환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IOC 위원에 한국을 알리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전자·IT 전문 전시회인 CES를 꺼내들었다. 사면 후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촉박한 상황에서 부랴부랴 초청 일정을 마련한 것은 한 마디로 보여줄 게 많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를 한꺼풀 들춰 보면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가 바로 IT 경쟁력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올해 CES는 삼성·LG전자 등 우리 전자업체들의 독무대였다. 경기 불황으로 전시 규모가 크게 줄었지만 우리 업체는 달랐다. 삼성만해도 지난해보다 오히려 참가 부스를 늘렸다. 흥행도 대성공이었다. 전시회 기간 내내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특히 삼성은 다른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규모·제품·기술 면에서 최고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소니·파나소닉·인텔·마이크로소프트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이 모두 참석했지만 볼거리 면에서 삼성을 따라올 기업이 없었다. 세계 시장 1위 반열에 오른 TV·휴대폰·반도체 등은 기술 경쟁력 면에서 전시장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싫으나 좋으나 삼성은 이미 우리 입장에서 단순한 기업 이상이다. 삼성 브랜드가 오히려 국가 브랜드보다 높다는 것도 이제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국가 이미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해외가 보는 코리아의 이미지에 첨단 정보·전자 기술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이 회장이 한국을 알리는 첫 카드로 제일 먼저 ‘CES’를 지목한 것도 글로벌 삼성, 나아가 대한민국 위상을 보여주기에 이만큼 좋은 국제 무대가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 회장의 말대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려면 정부·기업·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하지만 유치 경쟁 국가와 비교해 우리가 진짜 내세울 게 무엇인지 곱씹어 봐야 한다. 이 회장의 공식적인 활동에 나선 것이 관심사이지만 왜 첫 무대가 CES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만 하다.
강병준 생활가전팀장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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