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서혁신이 기업혁신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의 혁신활동이 주로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효율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핵심 화두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관련해 ‘문서’가 주요한 테마로 등장한 것은 업무 활동의 상당부문이 문서 작성과 유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서는 정보 공유의 극대화와 정보 유출 방지라는 현 기업의 두 가지 고민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처럼 문서혁신은 기존 혁신 활동을 한 단계 더 고도화하는 기회이자, 정보 공유 수준을 높이고 기업의 핵심 정보 유출을 미연에 방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복합적인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기업혁신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포스코·LG디스플레이 등 주요 대기업들이 문서혁신의 기본 틀을 완성했으며, 베스트 프랙티스에 대한 입소문이 확산되고 있어 유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프로세스혁신(PI) 기반의 전사적자원관리(ERP) 만큼 문서혁신이 새로운 ‘유행’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기업 경영진들의 고민과 문서혁신이라는 테마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업무 중 문서로 처리되는 업무가 5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문서가 전체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의사결정과 정보 소통을 위해 작성·유통되는 문서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이러한 문서의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목표하는 것은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문서혁신을 추진하는 기업들 중심에는 포스코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하이닉스반도체·SK텔레콤·KT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출발점은 달라도 결국 문서혁신으로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겠다는 목표는 같다.
현재 문서혁신을 추진하는 기업들의 핵심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공유다. 개인별 PC에 있던 모든 문서를 한 곳에 모으고 이를 전체 직원의 지식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잦은 이직 문화와 인사 이동 등으로 회사의 핵심 문서들이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앞서 문서혁신을 추진한 포스코는 현재 하나의 문서에 대한 활용률이 혁신 이전보다 9배 늘어났다고 자체 분석하고 있다.
두 번째는 보안이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 기술 유출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보유하고 있는 선진기술을 지키기 위한 노력 차원이다. 보안은 포스코와 LG디스플레이 등이 문서혁신을 추진한 핵심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협업이다. 많은 기업은 협업을 위해 문서를 배포하고 취합하는 등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문서를 서버에 저장하고 이를 서로 공유하게 되면 협업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은 상당부문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페이퍼리스(Paperless)로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공유, 보안, 협업…PC 저장 금지=기업들의 문서혁신 구현 방식은 각기 추진하게 된 동기와 목표에 따라 차이가 뚜렷하다.
가장 많은 기업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포스코의 문서혁신은 정보보안의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전기강판 기술 유출 사고로 몇 조 단위의 손실이 일어났고 뒤이어 파이넥스공법 기술 등 핵심 기술 보안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또 하나의 출발점은 문서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2007년 당시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6개월 전에 개발된 소로트메가와이(적은 양의 원료로 높은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는 포스코의 핵심 기술) 기술자료를 찾아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 지시를 받고 한 달간 모은 자료가 실제 관련 자료에 50%에 불과했다. 더욱이 핵심 자료는 찾지도 못했다.
관련 핵심 문서들이 퇴사한 직원, 출장간 직원들의 개인 PC에 들어 있어 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은 “제조 현장에서는 심지어 너트·볼펜도 하나 단위로 물품을 관리하는데 수 조원의 가치가 있는 핵심 문서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 호통을 쳤다.
기술의 유출 방지와 축적,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서혁신에 돌입한 포스코는 개인 PC의 저장기능을 100MB 수준으로 제한하고 모든 문서를 중앙 서버에 저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문서 생성시점부터 관리와 보안을 적용해 모든 문서를 축적한다는 것이 초점이었다. 또 문서 작성자, 승인권자, 결재자, 코칭자 등 문서의 관련 업무자를 입력하게 하고 결재과정을 눈에 보이게 해 프로세스 혁신의 단초로 삼았다.
포스코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던 LG디스플레이도 유사하다. 하지만 우선 PC에 정해진 용량 내에서 문서 저장 후 중앙 서버에 등록하도록 하는 포스코와 달리 LG디스플레이는 PC에 저장 기능을 없애고 문서를 저장하기 이전에 먼저 서버에 문서명을 신고한 후 문서 저장시 곧장 서버로 저장되게 한 점에서 강제성은 한 수 높다.
PC 용량 제한을 통해 강제적으로 문서 중앙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 포스코와 LG디스플레이는 중앙 서버에서 다른 문서 분류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포스코는 ‘조직체계’를, LG디스플레이는 ‘업무 프로세스’를 기준으로 폴더를 분류했다.
LG디스플레이가 업무 프로세스로 폴더를 분류한 이유는 문서혁신이 프로세스 단위별로 문서를 축적하고 혁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현병탁 LG디스플레이 업무혁신담당 상무는 “문서혁신 프로젝트의 동기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도 업무에 대한 모든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1등 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하이닉스반도체와 SK텔레콤은 문서 공유와 가상 협업 공간 마련을 통한 의사결정 효율화 그리고 협업을 통한 산출물과 지식에 대한 활용에 초점을 뒀다. 특히 하이닉스반도체는 유비쿼터스 업무 환경 조성에 중점을 뒀다. 온라인 가상 협업공간인 ‘하이오피스’를 통해 모든 업무가 가능하도록 해 비효율적인 문서 업무를 제거했다. 문서의 물리적 비용은 물론이고 문서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 창의적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현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SK텔레콤의 문서혁신은 문서를 한 곳에 모으되 자율성을 부여한 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자결재는 별도의 결재시스템을 이용하고 강제적 문서 중앙화보다는 의사결정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다자간 협업을 위한 플랫폼을 마련 중이다. 이를 통해 산출된 결과물을 내재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내달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개발 작업 중인 이석인 SK텔레콤 통합문서관리프로젝트 프로젝트매니저(PM)는 “협업을 통해 중요한 문서를 축적하고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자발적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갖게 해주는 방안과 회사의 자산 축적 측면에서 강제성 갖는 것에 대해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계획 단계인 KT는 문서를 중앙화하면서 보안까지 강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서버기반컴퓨팅(SBC)에 데스크톱 가상화 기술을 결합해 개인 PC에 들어있는 각종 프로그램까지 중앙집중화할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문서에 대한 보안 강화와 향후 모바일 컴퓨팅 환경 구현을 위해 데스크톱 가상화를 병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도 이달부터는 가상화 기술을 적용한 SBC 환경을 통해 PC 저장을 금지하고 PC 내 프로그램들도 서버로 중앙화 할 방침이다.
◇개인 PC가 사라진다…모바일 업무환경 조성=모든 문서의 중앙화를 시도하고 있는 포스코와 LG디스플레이는 개인 PC와 고정석이 없어지고 모든 직원의 모바일 근무체제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떤 PC든 중앙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면 내 책상이 아닌 어느 곳에서든 언제든 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병탁 LG디스플레이 상무는 “내 노트북이 아니어도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무선 네트워크 환경을 조성해 선 없는 사무실을 구현할 것”으로 언급했다. LG디스플레이 내에서 가장 먼저 문서혁신 시스템을 가동한 연구소는 이미 무선 네트워크 환경 조성으로 랜케이블이 없는 사무실을 구현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스마트폰을 지급하고 모바일 오피스 구현에 나선 포스코도 내년 이후 고정석을 없애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또 URL 링크로 중앙 서버에 접속하는 환경이 조성돼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컴퓨팅 환경을 마련하는 데도 유리하다.
하이닉스반도체는 하이오피스를 구현하면서 임원들에게 쇼옴니아폰을 지급하고 모바일컴퓨팅을 강화했다. 이관의 하이닉스반도체 정보자동화기획팀 부장은 “하이오피스를 메신저, 영상회의 등과 연계해 글로벌 통합 커뮤니케이션(UC) 환경을 조성하고 24시간 어디서도 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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