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 벽을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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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ETRC)는 지난 8월부터 10차례의 포스트게임 기획 시리즈를 통해 ‘게임 속성’과 ’게임 규제’ 등 게임의 현재를 짚어 보았다. 기획의 마지막 화두는 ‘게임의 미래’다. 게임의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에게 그 길을 물었다. 이 가운데 게임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미야모토 시게루와 세계적인 게임 디자이너 라프 코스터의 해답은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주었다. 게임의 ‘오래된 미래’인 두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게임의 미래 첫 회를 시작한다.  

“가상 세계와 인터넷이 보다 밀접하게 연결될 것입니다. 기능성게임, 예술로서의 게임 등을 통해 게임은 미디어로서의 확장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온라인게임의 원조 ‘울티마 온라인’으로 유명한 세계적 게임 디자이너 라프 코스터(38). 1990년대 MUD 게임을 시작으로 ‘울티마’와 ‘에버퀘스트’, 최근 가상세계 서비스 ‘메타플레이스’에 이르기까지 그는 줄곧 온라인 세계와 게임의 가능성을 앞장서 개척해 왔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로서 게임의 가능성이 극대화되고 게임과 인터넷과 현실 세계가 뒤섞여가며 게임의 미래가 만들어져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스터는 게임이 ‘패턴을 익히고 숙달해 과제를 해결해 가며 재미를 느끼는 과정’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미디어인 게임은 다른 모든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의미있고 도전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예술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의 이런 생각들은 게임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 내고 게임의 잠재력을 진지하게 탐구하기 위한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당신은 패턴과 학습을 게임의 본질로 보는 듯 하다. 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

 ▲게임은 질 나쁜 오락이 아니다. 게임은 일종의 매체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패턴을 파악해 과제를 해결하며 몰입을 느끼는 게임은 최상의 학습 환경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학습할 수 있는 기능성게임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초기 단계 매체인 게임은 아직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기 보단 인간의 행동이 가장 노골적 형태로 나타나는 무대의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게임이란 매체가 성숙하며 인간 정신에 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예술’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은 이미 시작됐으며 다만 사회의 인식이 아직 이를 못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접근은 ‘기능성게임’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놓는다. 학습과 인지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들은 게임을 통한 학습이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나의 저서 ‘재미 이론’에서 언급했던 많은 내용들이 힘을 얻어 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교육과 학습을 위한 뚜렷한 목적성을 지닌 게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당신은 게임계를 떠나 사용자가 자유롭게 자신만의 가상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가상세계 서비스 업체 메타플레이스를 창업했다. 가상 세계의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10여년 이상 가상세계 서비스를 꿈꿔 왔지만 기술적 한계 등으로 인해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웹 기술이 개화하면서 내가 꿈꾸던 ‘모든 사람을 위한 손쉽고 자유로운 가상 세계’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사용자제작 가상 세계라 할까. 이 안에서 사람들은 친구를 맺고, 자신의 관심사와 재능을 표현할 수 있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메타플레이스’에는 중학생이 만든 습지 관련 교육 도구나 양방향 타로 점집 등 창의적인 활용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게임 역시 이 가상 세계 속에 포함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활용법들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가상 세계의 가능성이다. 산업은 우리가 생각도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가상 세계가 웹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게임과 웹이 통합된 강력하고 풍성한 소셜 서비스를 창출해 낼 것이다.

 -가상 세계는 현실에 얼마나 밀접하게 통합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케냐에서는 사람들이 실제 돈 대신 현지 이동통신사의 통화 시간을 급여로 받거나 저축하는 경우도 있다. 이통사가 제공하는 가상 재화인 통화 시간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금융 자산도 가상의 재화 아닌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 세계와 현실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현재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템 거래’다. 아이템 거래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전적으로 ‘순수한’ 게임이란 없다. 게임도 외부와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육상에도 도핑 스캔들이 있고, 선수들은 더 좋고 비싼 러닝화나 테니스 라켓을 찾는다. 모두 외부에서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아닌가. 그럼에도 어떤 것은 받아들여지고, 어떤 것은 불공정 행위로 인식된다.

 -한국 게임 산업은 부분유료화 모델을 선보이며 가상 세계를 개척해 왔다. 한국 게임계에 한마디 조언을 한다면.

 ▲부분유료화 모델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다. 장기적으로 게임 기업의 비즈니스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아이템 거래를 해야만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면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과 차이점이 없어질 것이고, 이는 게임 산업의 장기적 성장성을 갉아먹을 것이다. 한국은 온라인 게임의 선도자이며 한국 개발자들은 세계 수준의 창의력을 보이고 있어 주목하고 있다. 한국산 게임도 주요한 게임들은 체크하고 있다.

 ※라프 코스터는=온라인 게임의 초창기 형태인 MUD 게임 개발을 시작으로, 울티마 수석개발자를 지냈으며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최고창의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로서 ‘에버퀘스트’와 ‘스타워즈 갤럭시’ 등의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개발을 주도했다. 2006년 가상세계 서비스 ‘메타플레이스’를 창업했다. 게임이란 무엇이며 왜 재미있는지, 게임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등을 제시한 저서 ‘재미 이론’으로 주목받았다. 기타 연주 음반을 낸 음악인이기도 하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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