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인사제도로 연구성과·조직운영 극대화
‘일하고 싶은 부서와 희망직책을 적어내라. 발령나면 죽도록 일하라.’
정부출연연구기관 개혁의 선두에 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홍택호가 개혁 신호탄으로 ‘부서·직책 희망제’ ‘인력풀제’를 내걸었다. 일하고 싶은 희망부서와 직책을 적어내 인력풀을 만들고, 이 중에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발해 적재적소에 앉혀 출연연 개혁을 이끌겠다는 파격적인 인사제도다. 연령·직급·직책 등에 상관없이 일정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인력풀에 등록하는 것이니 만큼, 기존 연공서열과 직급 등의 대대적인 파괴가 예상된다.
29일 KIST에 따르면 한홍택 원장은 최근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앞두고 부원장, 부장 등 주요 간부 인사를 위해 사내 연구원들로부터 희망 직책 신청서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말 KIST 최초 외국인 원장으로 취임한 한 원장은 정부출연연 개혁 첫 모델로 인력풀과 부서·직책 희망제를 내세워 기존 틀을 무너뜨리고 있다.
원장이 일방적으로 인사권을 휘두르는 대신 연구원들에게 원하는 자리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 이 모델의 핵심이다. 자신이 원하는 부서와 직책을 부여받아 일을 하며 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일정한 기준을 갖춘 연구원은 모두 이 대상에 해당되기 때문에 경쟁 역시 치열하다. 경쟁에서 탈락된 기존 간부들은 연구원 신분으로 돌아간다. 연공서열은 물론이고 기존 상명하복의 직급체제가 사실상 붕괴되는 셈이다.
KIST의 43년 역사 중 이 같은 ‘간부 지원서’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IST는 이러한 인사제도를 개방형 인사제도라고 부르며, 제도가 시행되면 연구 성과와 조직 운영의 효율성이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KIST는 또 외국인 자문위원 6명이 참여하는 경영 개편안 자문위원회를 구성, 글로벌 연구기관에 걸맞은 경영 혁신을 꾀하기로 했다. KIST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자문위에는 네트워크장비 업체 자일렌 창업주이자 ‘아시아의 빌 게이츠’로 유명한 스티브 김(한국 이름 김윤종)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이 참여했다. 자문위는 향후 ‘KIST 재도약추진위원회’가 마련 중인 경영 개혁안의 컨설팅을 맡게 된다.
오건택 KIST 경영기획실장은 이와 관련, “이러한 시도들은 KIST 역사상 처음”이라며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해 국제적 연구소로 변신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한 원장은 이에 앞서 전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KIST 개혁 방향을 놓고 난상 토론하는 ‘타운홀미팅’을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연구원·행정원 등 그룹별로 직원들과 면담한 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 원장의 1차 개혁 목표는 2∼3개의 대형 연구과제를 조기에 발굴하고 해외 우수 인력 영입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연구소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