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해와 통합, 공동번영의 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永眠)했다. 한 달여가 넘는 기간 동안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 18일 결국 현실 세상을 끝내 등지고 영원의 세계로 길을 떠났다.

 그는 일생을 통해 관철하고자 했던 그만의 민주주의 완결판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비운에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까지 서거하면서 대한민국은 3개월 만에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잃게 됐다.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투신해온 민족의 거목을 잃은 셈이다.

 현실 세계의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투신해온 그는 이 땅의 민주화와 서민대중의 큰 지도자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의 삶은 너무나 굴곡이 심했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6·25 전쟁 발발 직후엔 북한군에게 붙잡혀 우익반동이라는 이유로 총살될뻔 했으나 탈출했다. 유신정권 아래에선 정적 숙청 계획에 의한 피랍 등 죽을 고비를 숱하게 겪었다. 좌우로 정치권이 극명하게 대립하면서 보수세력으로부터 이른바 ‘빨갱이’로 몰려 평생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스로 만들지도 않은 지역주의의 악령이 그를 늘 괴롭혔다.

 그런 속에서도 그의 통일론은 많은 사람의 동조를 이끌어냈다. 남북연합, 연방제, 통일국가를 골자로 하는 3단계 통일론은 대통령 당선 이후 햇볕정책으로 구체화하기에 이르렀다. 남북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와 금강산 관광으로 이어졌다. 특히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나아가 남북교류와 공존 및 통일을 위한 사전 선언적인 성격이 짙은 6·15 선언을 이끌어냈다. 대결과 반목으로 점철됐던 남북 관계는 화해와 협력, 교류의 구도로 바뀌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 경제대통령으로도 기록됐다. 국가부도 사태에 몰린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과함히 해외 투자를 유치했으며 경제 구조를 개혁, 체질 개선에도 기여했다.

 그는 특히 정보화 강국의 기틀을 마련한 초대 정보기술(IT) 대통령으로도 유명했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보화 혁명을 주창하면서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PC를 제일 잘 사용하는 ‘정보화 대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약속은 세계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현실이 됐다.

 그는 5년 재임기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반도체·통신·소재 등의 IT산업을 적극 육성했다. IT산업을 매개로 한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이 기간 동안 강력하게 추진됐음은 물론이다.

 세계가 그의 정보화 정책과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주시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IT의 테스트베드로 부상했으며 해외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로, 국내 기업들은 해외로 나갔다. 국내 IT기업의 글로벌화가 탄력을 받으면서 급속하게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남북분단과 산업화·근대화 속에서 계층, 이념, 지역으로 갈려 있었다.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로 나뉘어 끝없는 반목과 갈등이 점철됐다.이런 와중에 그는 실로 많은 것을 대한민국에 안겨줬다. 무엇보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물결 속에 그늘이 드리워진 어두운 곳, 낮은 곳, 서글픈 곳, 아픈 곳을 한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줬다. 나와 우리만이 아닌 휴전선 너머 사는 사람들도 같은 동포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가 떠난 빈자리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명하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화합의 길을 나서야 한다. 그가 영원의 길을 떠나면서 던진 민주주의의 완성과 완결을 위해서다. 그리하여 있는 자와 없는 자, 기성세대와 신진세대의 화합과 통합을 이뤄야 한다. 분열과 갈등의 시대로 퇴행할 것인지 화해와 통합, 공동번영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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