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GAME] 5개국 게이머 인터뷰

“(게임) 해 봤어요? 안 해 봤으면 말을 마세요.”

게임은 실제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생각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다른 콘텐츠와 달리 플레이어의 적극적 참여를 필요로 하는 ‘참여형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게임의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주위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지 못해왔다. 그러면서 게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더 커졌다.

전자신문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독일에서 직접 게이머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 결과 게이머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게임이 주는 도전과 흥분에 열광하면서도 몰입이나 폭력성 등 게임 콘텐츠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다. 서구 게이머들이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중요시하는 반면 아시아권 게이머들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규제에 보다 호의적이라는 차이점도 발견됐다. 5개국 게이머 13명과의 인터뷰를 가상 대담 형식으로 구성했다.

# 왜 게임을 하는가

-일단 게임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또 왜 게임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요.

▲마즈모토=어렸을 때부터 주변 친척이나 친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게임을 접했습니다. 게임센터도 자연스럽게 다니게 됐고요. 실제로 움직이는 오토바이 게임을 보고 ‘굉장하다’고 느꼈고, 학교에서 전혀 몰랐던 친구와도 게임을 통해 친해졌던 경험이 신기했어요. PC를 산 후엔 한참 온라인 게임에 빠졌습니다.

▲김귀희=게임을 하던 친구와 친해지면서 하게 됐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고 그 세계관에 흠뻑 빠졌고, 이런 세계관을 나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길을 고민하다 게임이란 미디어에 도전하기로 해 전공까지 하게 됐죠. 게임은 간접 체험을 손쉽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게 큰 장점이예요.

▲무니르=저에겐 게임이 뭔가를 배우는 과정이란 점에 매력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못 해도 계속 연습하며 배우는거죠. 이런 과정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요. 뭔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이 너무 좋죠.

-게임을 통한 사회적 경험에 의미를 두는 분들이 많은 것 같군요.

▲이건혁=사회적 경험이란 것에는 게임을 매개로 한 실제 사회 관계와 게임 속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 PC방에서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후배들과 플스방에서 게임도 하고요. 옛날 선배들 모이면 당구치듯 자연스런 코스입니다. 어울려 노는 것도 일종의 사회 생활이라면 요즘은 이런 경험이 주로 게임을 통해 이뤄지는 거죠.

▲대니얼=저는 게임 내에서의 사회성에서도 재미를 찾는 편입니다. 온라인 게임 내 사회에서 사회화를 할 수 있고 사회 관계도 트레이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친구 사이의 인터랙션도 가능하고요.

▲쩌우추엔=게임을 통해 친구를 사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온라인 친구들을 통해서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알게 돼요. 가령 저는 베이징에 사는데 남방 지역 친구들과 현지 생생한 뉴스나 지역 정보 등도 알 수 있고, 그런 점이 좋습니다.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함께 목적을 달성해 가는 과정도 재미있구요.

▲최영진=졸업 후 연락이 끊긴 고등학교 친구들을 우연히 게임에서 만나 더 친해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에서 이뤄지는 사회 관계는 인간 관계의 원초적 측면을 극대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남을 속이고 이용하려는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주의가 필요해요.

# 게임과 나

-게임을 하는 재미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게임 속 나에 대해 말해 볼까요. 현실과 같은지 혹은 다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대니얼=게임 속 캐릭터를 키워 강하게 만들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캐릭터를 키우다 보면 나 자신이 성장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기쁨을 느끼게 되거든요.

▲진청져=게임의 세계관이나 캐릭터와도 관계가 있는 문제긴 한데…. 저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에서는 제일 앞장 서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며 보스를 공격하는 탱크 스타일이고, 그런 모습이 스스로 맘에 들어요. 반면 현실의 저는 조용한 편이죠.

▲카미야=한창 MMORPG에 빠졌을 때 게임 속의 나와 실제의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죠. 저는 항상 치료 능력이 강한 ‘힐러’ 캐릭터를 선택합니다. 힐러를 통해 희생하는 모습과, 내가 갖고 있는 무언가로 남을 돕고 싶다는 제 마음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게임 내에서 보다 공격적이 될 수는 있지만, 본질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게임이 실제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보나요.

▲최영진=캐릭터에 제가 원하는 역할이나 성격을 설정하는 것도 재미있죠. 이를테면 치료 능력이 강한 ‘힐러’ 캐릭터를 키우되, 적에게는 최대한 거칠게 행동한다든지 하는 식이죠. 다양한 성격을 실험해 보는 것이기도 하고…. 주로 제가 설정하는 성격이 캐릭터에 투사되지만, 오랜 시간 플레이하면 캐릭터의 성격이 오히려 게이머에게 옮겨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니르=어려운 문제입니다. 게임이 점점 현실성을 띠게 되고, 가상 세계와 현실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경계가 흐려졌죠. 하지만 총쏘기 게임을 좋아한다고 현실에서 총을 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마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이 게임을 만났을 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게임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긴 어렵겠죠.

▲김귀희=저는 사람이 게임 내용을 무조건 흡수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엔 회의적입니다. 게임뿐 아니라 영화든 TV 등 받아들이는 사람의 내면의 문제겠죠. 부정적 방식으로 게임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게임이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겁니다. 다만 저는 게임만 하면 시야가 좁아지니까 영화·TV·책 등을 다양하게 즐기려 하고 있습니다.

# 게임에 대한 인식

-사실 게임이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하는 분들이 많죠.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차가운 것이 현실입니다.

▲리빙=중국에서도 또래 집단에서는 그런 시선이 별로 없습니다만, 부모님 세대의 80∼90%는 부정적이라고 봐야죠.

▲고바야시=일본서도 게임이 언론의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중독이나 폭력, 외설 등이요. 그런 지적을 받을만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필요 이상으로 떠드는 듯 해요. TV나 책에도 위험한 부분들은 있잖아요.

▲대니얼=과거에는 나쁜 사건이 일어나면 음악이나 영화가 문제라고 했었죠. 요즘은 화살이 모두 게임으로 날아오는 듯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또 그리로 비난의 초점이 옮겨가지 않을까요.

-이런 부정적 인식 때문에 여러 규제가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청소년들이 밤 늦은 시간대엔 온라인 게임에 접속 못하게 하자는 법안도 거론됐고….

▲마즈모토=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사업자 수익엔 영향을 미치겠지만,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좋을 것 같습니다.

▲자크=글쎄요. 셧다운하면 청소년들이 게임을 안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안일한 접근입니다. 누구도 통제당하길 원하지 않죠. 아이들은 뭔가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겁니다. 에이즈 교육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게임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애론=정부는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을 나을 수도 있죠.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게임을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혁=동감입니다. 부모님 세대는 게임을 해보신 적이 없으니 잘 알지 못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계시잖아요. 저희처럼 게임과 함께 자란 세대는 나중에 자녀에게 게임을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놀이 중 하나일 뿐이죠. 무엇보다 요즘 아이들이 학원이다 과외다, 너무 할 일이 많아 실제 게임 외에는 다른 여가를 즐기기 어려운 상황이란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게이머나 게임 개발자·업계가 반성할 부분은 없을까요.

▲김귀희=젊은 게임 세대도 책임은 있어요. 어머님이 과일이라도 깎아 방에 들어갔는데, 게임만 하며 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당연히 안 좋아하시겠죠. 게임하는 법을 설명해 드리거나 하면 부모님도 의외로 좋아하시고 잘 받아들이시곤 합니다.

▲마쯔오카=한때 한국 MMORPG에 빠진 적이 있는데, 재미없는 부분이 있어요. 계속 레벨을 올린다든지, 뭔가 아이템을 모아야 한다든지 하는 시스템이 왠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았고,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영진=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은 특히 사람들을 게임에 오랜 시간 붙잡아 두고 이른바 ‘클릭 노가다’를 시키는 쪽으로 디자인된 것이 많다고 봅니다. 게임은 이제 문화로 자리잡았고, 우리 게임 업계도 이제 생존의 단계를 넘어 문화에 책임을 질 때가 됐습니다. 즐거운 게임을 누릴 수 있는 소비자운동도 필요하구요. 그렇다고 정부 규제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죠.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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