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한국정보사회연구원은 ‘오바마 정부의 정보기술 정책방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오바마 당선인이 모든 경제 정책에 IT를 접목,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온라인으로 하나 되는 미국 시민의 신뢰를 받는 정부 구현’을 국정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바마의 이 같은 IT정책은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정책을 모델로 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선 중 IT정책 자문을 담당한 ITIF(Information Technology & Innovation Foundation)는 지난 5월 ‘국제 광대역망 리더십 해설’이라는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가 초고속인터넷 정책을 시장에만 맡겨 놓은 것을 비판했다.
반면에 ITIF는 한국 정부는 초고속인터넷을 단순 공급 중심이 아닌 수요를 유발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개 국가 중 가장 우수한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사례2=지난 2005년 이후 통신과 방송의 교차 진입, 신규 컨버전스 서비스 출현에 대한 원칙과 철학 부재, 이해 관계자 간 갑론을박으로 IPTV 상용화는 하세월이었다.
지난 11월 KT가 뒤늦게 IPTV 상용 서비스에 돌입했지만 수년간에 걸친 소모적 논란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적지 않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에 역전(?)당한 초고속인터넷의 쓰라린 경험을 거울삼아 민·관이 손잡고 우리나라보다 먼저 IPTV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댁내광가입자망(FTTH)이 기반이 됐음은 물론이다.
일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IPTV 세계 기술 표준 특허 획득 등으로 세계 시장 주도권 재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IPTV 상용화 전제 조건인 세계적인 수준의 IT 인프라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IPTV 상용화가 늦어졌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극명하게 교차되는 위의 2개 사례는 정부의 역할과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정부의 역할과 철학에 따라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 설 수 있지만 반대로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자칫 후발주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초고속인터넷과 CDMA는 ‘IT코리아’의 대표 상품이자 글로벌 히트 상품이다.
초고속인터넷과 CDMA는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경쟁’과 ‘규제’를 통해 투자를 유도, 새로운 시장 창출에 주력한 정부와 과감한 투자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상용화를 실현한 사업자가 의기투합한 결실이다.
1500만가구 이상이 이용하는 초고속인터넷과 4500만명이 이동전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대한민국의 ‘명품’ 자산이다.
초고속인터넷과 이동전화는 의사 소통과 업무 처리의 기본 도구로, 생활의 편의 제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IT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주도한 견인차다.
초고속인터넷과 이동전화의 지속적 발전이 전후방 관련 산업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며 국내 IT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각국의 IT 선진사례 벤치마킹 첫 순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IPTV가 예상보다 출발 자체는 늦었지만 초고속인터넷과 CDMA에 이어 IT코리아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자리 매김할 것이라는 자신감과 확신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IPTV 제공사업자의 의욕과 열정이 예사롭지 않다. IPTV 자체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마련해 놓고 있다.
IPTV 성공을 위한 규제 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전폭적인’ 수준이라고 회자된다.
과거 초고속인터넷과 CDMA 성공 사례가 IPTV를 통해 또 한 번 재현될 것이라는 안팎의 기대감이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다.
그러나 IPTV가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미래 성장 동력으로의 자리 매김이 저절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IPTV 제공사업자가 추진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모두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모든 IPTV 제공사업자가 성공을 누릴 수도 없다. IPTV 제공사업자 지금부터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산업과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IPTV는 물론이고 유무선 통신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업자 스스로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성장 동력 발굴 위한 각고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무선을 막론하고 통신은 이미 포화 상태다. 새로운 가입자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경쟁을 통해 상대방의 가입자를 빼앗아 올 수 있는 마땅한 수단도 없다.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은 결국 제살 깎아 먹기라는 것이 이미 증명된 마당에 이익을 포기하고 가입자만 늘려봤자 성장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고, 품질 차별화를 하자니 기반이 될 기술은 차별성을 잃고 보편화 단계로 진입했다.
지금이야말로 통신의 기본 경쟁 구도가 바뀌는 전환점이며, 이에 적절히 대응하면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역설적 지적도 있다.
규제 기관의 역할과 철학도 달라져야 할 시점이다.
‘투자가 먼저다, 성장이 먼저다’를 논하기 이전에 투자와 성장이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게 규제 기관의 몫이다. ‘경쟁이 능사’라는 인식도 재고해야 한다.
사업자가 철저히 서비스와 시장 논리에 의해 경쟁하고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 문턱을 낮추고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가 잇따르는 등 규제가 완화됐지만 여전히 예측가능성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심지어 역차별이라는 주장에 현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는 비난까지 제기된다. 최소의 규제가 최대 효과를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냐는 반문도 나온다.
형식에 그친 투자는 결코 성장의 지렛대가 될 수 없고 성장없는 투자는 무모함을 초래할 뿐이라는 조언을 규제 기관은 더욱 되새겨야 할 것이다.
김원배·황지혜기자 adolf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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