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대책찾기 골몰
삼성전자·LG전자·LG디스플레이 등 주요 전자업체는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면서 실물 경기가 받게 될 영향의 폭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할 만큼 시계 제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삼성은 8일 오전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이기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주재로 열린 정기 사장단 협의회에서 금융 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제 상황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지만 원칙적인 현 상황만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삼성 매출과 이익의 90% 정도가 글로벌 차원에서 발생해 수요 위축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에 공감하고 대안보다는 글로벌 시장에서 일어나는 변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체제를 갖추자는 식의 원칙적인 이야기만 오갔다”고 말했다.
LG전자 측도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의 영향은 금융 분야는 적어도 연말까지, 실물 경기는 1년가량 영향권에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내년 경영 계획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보수적이라는 기조 외에 지금까지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중소 전자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세용 삼성전자 협성회 회장(이랜텍)은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 고객사와 이를 원가 구조에 어떻게 반영할지 논의하고 있다”며 “눈앞에 닥친 원가 상승 문제로 내년 사업 계획 구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LCD 장비 기업 디엠에스 박용석 사장도 “LCD 산업 경기가 내년 말까지 침체될 것으로 예측, 대다수 기업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골몰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게 고민”이라고 전했다.
국내 최대 BLU 업체 관계자는 “올해 들어 우영·태산이 무너진 것은 전조에 불과하다”면서 “대규모 판가 인하가 예상되는 내년에는 협력사 판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미 금융 위기와 고환율 여파로 시장이 바짝 위축되는 등 실물 경기에 전이될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일(현지시각) 발표한 세계경제전망보고서(WEO)에서 내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3.5%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6월 전망치인 4.3%보다 0.8%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IMF는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는 내년 0.1% 성장에 머물러 사실상 정체상태를 면치 못하고 일본(0.5%), 유럽연합(0.6%) 등도 1%에 못 미치는 성장을 예상했다. 아울러 중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9.3%로 종전에 비해 0.5%포인트 낮췄다. 지난해 한국의 수출액(본선인도 조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중국(22.3%), 미국(12.5%), 유럽(16.3%), 일본(7.7%) 등을 합할 경우 무려 60%에 육박하는만큼 이들 국가의 성장 둔화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우려된다.
전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환율 상승은 대개 수출 개선효과로 나타나지만 지금 문제는 글로벌 경기 상황이 안 좋다는 점”이라며 “국내 IT제품이 주로 수출되는 선진국이 금융불안 여파로 안 좋고 개도국도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수출 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는 이어서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시장을 세분화해 공략함으로써 살아 있는 수요층을 잡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내수에서도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대형마트 3사의 지난달 매출 실적이 모두 감소했다.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9월 모든 점포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 역시 신규 점포를 제외한 기존 점포의 9월 매출 합계가 작년 동기 대비 5.0%나 감소했다. 롯데마트 역시 기존 점포 기준으로 9월 매출 실적이 작년 동기 대비 5.5% 감소하면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매출 신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강병준·서한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