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이었다. 사람을 만나는게 직업이긴 하지만 그가 시를 좋아하고 실제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점에서 의외였다.
우리나라 대표 보안기업으로 성장한 소프트포럼의 실소유주인 김상철 회장(55). 그는 사업가이기 이전에 자칭 ‘시인’이었다. 더구나 그는 최근 몇 건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별칭까지 얻은 터였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그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순전히 그럴줄 알았다는 투였다. 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사무실 한 켠에 쌓아놓은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박스 속에는 액자와 책자가 가득했다.
불쑥 하나를 집어 내밀었다. 그가 지은 시를 담은 액자였다. 한동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번 읽어보라는 뜻이었다. 자랑하고 싶은 듯 했다. 아니, 말이 많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말보다는 글을 한번 읽어보는 게 빠를 것이라는 뜻이 분명했다.
자신의 시중 가장 마음에 든다는 ‘내 어머니’란 시였다. ‘이른 아침’으로 시작되는 그의 시는 어머니의 한 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액자 속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과 까까머리 아이가 낡은 흑백사진인 채로 담겨 있었다. 흡사 한편의 옛날 얘기를 보는 듯 했다.
그의 이야기는 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어머니와 시 얘기로 돌아가면 아득한 즐거움에 빠진, 약간은 들뜬 아이를 보는 듯 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은 단어가 바로 ‘어머니’와 ‘시’였다.
#영업사원으로 사회 첫발
그의 첫 직장은 금호전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1978년 그해에도 직장 잡기가 쉽지 않았다. 계측기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취직이 우선이었다. 행정학을 전공한 그가 전자정보통신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영업을 하면서 인생을 다시 보게 됐다. 30여년간 영업만을 하다보니 몸에 밴 것이 바로 영업정신이다. 영업을 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직장 생활 초기 이른바 남들이 하는 술 접대 영업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런 영업은 한 단계 낮은 영업이란 걸 깨닫게 됐다. 영업이라는게 업무의 특성상 항상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을’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자신을 파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응대하고 성심껏 해결하다 보면 그곳에서 답이 나왔다. 진실성이 상호 소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영업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술과 담배를 끊었다. 오히려 영업 성과가 더욱 높아졌다.
그는 이후 금호전기 영업본부장을 거쳐 금호미터텍 회장, 두레테크 사장, 소프트포럼 대표이사를 거쳐 최근에는 주문형 반도체 설계 및 제조·판매회사인 다윈텍의 대표이사 직함을 얹었다. 계획 중인 일들이 잘 풀리면 앞으로도 대표이사 직함을 몇 개 더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진정한 기업인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기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봉급이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급여를 줄 수 없다면 자격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자 원칙이다.
기업가라면 반드시 직원에게 봉급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조직의 체계에 따른 승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경영 원칙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중소기업의 상황이 어려워진 점을 감안하면 그럴 것도 같았다.
특히 기업가는 직원에겐 봉급 이외에도 비전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커스터머에게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곁들였다.
오너가 기업을 직접 경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은 반드시 전문가의 몫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프트포럼이나 다윈텍을 전문경영인이 책임지고 경영하도록 한 것은 당연한 듯 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8∼9건의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더라도 기업 경영은 전적으로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작정이다.
기업의 사회 공헌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으로 성장했다면 반드시 사회공헌 경영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사회적 도움을 전제로 한 것이며,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로터리클럽에 가입해 봉사활동에 열심인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듯도 했다. 강원도 수재민 돕기에 나선 것이나 몽골·캄보디아 등 해외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것도 이 같은 생각을 실천하기 위한 조그만 활동에 다름 아니다.
#성장의 한계는 M&A로 풀어야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M&A다. M&A는 기업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아무리 우수한 기업이라 해도 기술개발·영업·해외 진출 등으로는 초기 단계에서 어느 정도 규모를 키울 수는 있지만 곧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M&A를 기업 사냥이나 뻥 튀기 등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순기능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IBM이나 오라클 등 글로벌기업의 성장사가 바로 M&A의 역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M&A에는 위험 요소가 많다. M&A의 귀재라고 하는 그도 성공 확률이 10∼20%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동안 자신이 몇 건 성공한 것은 단지 ‘운’이 많이 따랐을 뿐이라는 게 그에게서 돌아온 답이다.
그가 M&A시 따져보는 원칙이 있다. 우선 M&A 대상 기업의 자산을 보는 것이다. 기업의 자산이 충분하지 못하면 아무리 매출이 많아도 위험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비즈니스 자체는 후순위다. 매출은 사실 한동안 수직 상승하다가도 일순간 수직으로 꺾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포럼이 대표적이다. 그가 인수를 결심할 당시 소프트포럼은 적자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가 보유한 자산은 알짜였다. 적자라고는 하지만 보안 소프트웨어라는 분야와 회사 조직 구성상 자신이 섰다.
보안은 현재와 미래 분야가 동시에 있는 품목이다. 문제는 회사의 조직이었다. 2005년 M&A 당시 회사의 인적 구성은 항아리 구조였다. 일할 사람보다 관리자가 더 많은 구조라는 것이다. 조직 구성을 피라미드 구조로 바꾸는 게 시급했다. 곧바로 시행했다. 남은 직원에게는 비전과 자부심을 심어줬다. 1년만에 흑자 구조로 바뀌었다.
두 번째 원칙은 빠른 시간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시간을 끌면 실패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M&A와 함께 곧바로 단행하는 것만이 휴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기업의 매카니즘과 경영권을 존중해줘야 한다. M&A했다고 점령군 행세를 하다가는 100% 실패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유진기업을 높이 평가한다. M&A의 기법으로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유진은 M&A를 통해서 기업의 규모를 10배 이상 단시간내 키웠다. STX도 그렇다. 노사 갈등 등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M&A 기법만 놓고 보면 이랜드도 그런 범주에 넣을 수도 있다.
#1조원대 그룹 만들고파
그의 사무실엔 유난히 액자가 많다. 모두 진품이다. 그의 사무실뿐 아니라 건물 곳곳에 걸린 그림은 거의 모두가 진품이다. 혹시 그가 걸도록 한게 아니라면 몰라도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림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근무 환경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환경을 중시하게 된 건 국내 굴지의 그룹사인 A사를 방문하면서였다. A사의 경우 1970년대에는 임원들로 하여금 사내에서 군화를 신고 다니게 할 정도로 군사문화가 남아있던 시기였다. A사 화장실을 둘러본 그는 충격을 받았다.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런 화장실 문화가 오늘날의 A그룹을 일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래서 안산공장 조경에는 손수 신경을 썼다고 한다. 색색의 장미로 회사 정원을 꾸미고 나무를 심는 등 조경에 온갖 정성을 들인 덕분에 안산 최고의 조경을 갖춘 건물로 자부한다는 것이다. 사무실도 다양한 예술품과 온갖 화초로 채워졌다.
환경이 생산성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인재이긴 하지만 그런 인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1차 목표는 1조원대 그룹을 만드는 것이다. 중소기업으로 치자면 보통 25∼30개 기업군을 거느려야 1조원대 그룹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IT와 비IT 분야 8∼9개 기업군을 대상에 올려 놓고 M&A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박승정기자 skpark@
김상철 회장은
1953년생이다. 단국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30여년간 영업 일선에서 발품을 팔았으며, 스스로를 영원한 영업맨이라 자부하고 있다. 인생은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살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을’의 위치에서 항상 고민하고 실천하는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존경하는 인물로는 ‘어머니’를 주저없이 꼽는다. 기업의 M&A에 특히 관심이 많다. 때로는 원치 않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M&A를 통해 비즈니스의 새 장을 열고 싶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