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상생과 조강지처

 지난주 디스플레이업계는 우울했다. 안팎에서 잇따라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 취임이라는 경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첫 소식은 바다 건너 들려왔다. 일본 소니가 샤프의 신설 10세대 패널공장에 대규모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LCD패널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일본의 주요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발표 하루 전만 해도 소니의 샤프 LCD패널 구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삼성전자의 충격은 더욱 컸다. 당장 10세대 설비 투자에 소니를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우리가 일본의 LCD패널산업을 멀찌감치 따돌린 상황에서 당분간 타격은 없겠지만 죽은 줄 알았던 일본의 부활이 영 찜찜할 뿐이다.

 전자신문을 제외하곤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더 큰 뉴스가 지난 주말 있었다. 나라 안 소식이다. 백라이트유닛(BLU)이라는 LCD패널에 붙이는 부품을 만드는 우영이라는 회사가 부도를 냈다. LCD업계는 물론이고 여의도 증권가와 명동 금융가도 깜짝 놀랐다. 자금 악화설이 돌기는 했지만 30년에 이르는 업력에 삼성전자와 같은 확실한 고정 납품처를 둔 우량업체로 꼽힌 이 회사의 부도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LCD업계 특히 부품 협력업체의 충격이 크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프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협력업체는 요즘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단가인하 압력이다. LCD업계에선 일상적인 일이다. 패널업체라는 공격수와 협력업체라는 수비수 위치도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횟수가 해마다 많아진다는 점이다. BLU업체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분기별로 이뤄진 단가 협상이 올해 들어 월별로 짧아졌다. 몇%가 됐건 협상 때마다 깎일 수밖에 없다. 말이 협상이지 실제론 일방적인 통고다.

 어찌 보면 패널업체가 협력사에 단가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수많은 협력업체 중에 골라서 일정 물량을 보장해주니 그러하다. 특히 인건비 외엔 고정비용이 적은 BLU는 다른 부품보다 단가 인하 여지가 더 많다. 더욱이 패널업체는 글로벌 가격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할지라도 요즘의 단가인하 압력은 정도를 넘었다.

 지난해 하반기엔 패널 값이 올랐다. 그런데도 패널업체가 BLU업체에 전한 말은 단가인하였다. BLU업체로선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매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더 속상한 건 패널업체의 최근 행보다. 패널업체는 최근 대만 BLU업체에 눈을 돌렸다. 이른바 구매선 다양화지만 속내는 우회적인 단가인하 압력이다. 패널업체만 바라보며 살아온 협력업체로선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벼락’ 같은 소리다. ‘백년해로’하자던 지아비가 첩을 둔 꼴이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하다. 거래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소니가 다른 패널업체를 찾듯 패널업체도 다른 협력사를 찾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바꿨더라도 기존 협력사의 고마움을 잊어선 안 된다.

 패널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틈만 나면 외치는 게 ‘상생’이다. 쉽게 말하면 ‘같이 잘살자’는 뜻이다. 협력사는 이 말만 믿고 성심을 다해 고생했다. 이런 조강지처를 이젠 쓸모없다며 내치는 지아비는 이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