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5년 결산](2)동북아 R&D허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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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김유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왼쪽)과 쿠릴스키 파스퇴르 연구소장이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설립 협정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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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2003년 3월 20일 박호군 참여정부 초대 과학기술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동북아 연구개발(R&D) 허브 구축 등 세 가지를 당면 과제로 설정해 적극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미국이 세계 우수두뇌를 끌어들여 초강대국이 된 것처럼 한국도 최고 두뇌집단을 유치, 국가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우리나라의 외국인력 유치여건은 매우 열악했다. 2003년까지 외국기업 연구소는 106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5년 뒤 500개로 늘려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나, 일본 아일랜드시티처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참여정부는 R&D 거점 육성사업을 서둘렀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영국의 카벤디시연구소, 러시아 국립광학연구소가 한국에 분원과 공동연구센터를 설치하면서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참여정부의 해외 R&D센터 유치는 실속이 없었다. 명분상 공동연구센터였지, 공동연구보다는 마케팅을 위한 거점, 혹은 명분상 연구소를 유치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국내 외국인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투자 비율은 평균 1.57%에 불과했다. 내국인 설립기업의 2.56%와 비교할때 크게 뒤처지는 수준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더 부실하다. 2006년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해외 R&D센터의 60%가 연구원수 20명 이하인 소규모였고 주로 기초연구보다는 개발업무에만 치중하는 사례가 태반이었다. 외국인 연구원은 연구소당 0.19명에 불과하고 특히 박사급 외국인 연구원은 10명 남짓이었다. 원천기술 개발 및 기초연구의 경우 8.6%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신제품 개발 및 개량(71.0%)에 머물고 있다. 핵심연구보다는 응용연구를 통해 한국형 제품을 만들고, 이를 한국에 판매하는 연구개발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한국을 R&D 중심기지가 아니라 현지화를 통한 단순 생산기지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외국 연구기관이 한국을 떠나는 일도 생겨났다. 2007년 초 인텔의 한국R&D센터 폐쇄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텔의 철수는 해외 R&D센터 유치사업과 동북아R&D허브 구상의 현주소를 잘 보여줬다. 인텔 본사 차원에서 진행 중인 글로벌 구조조정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지만 한국 R&D센터에서 별 이득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철수했다는 게 정설이다.

 정부가 기업의 현주소와 연구개발 실정을 무시하고 R&D 유치실적을 올리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우리나라에 R&D센터를 두고 있는 외국기업은 대부분 중국과 인도 등에 대규모 R&D센터를 두고 있다. 한국 R&D센터는 시장이 크거나, 연구기반이 좋은 중국과 인도에 비해 전략적 중요성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결국 권위있는 국내외 연구기관을 유치, 동북아지역 R&D허브를 구축하겠다는 참여정부의 과학입국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유치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연구기반 조성과 각종 지원제도, 국내 기업과의 다양한 협력 비즈니스 등을 묶는 신중한 R&D센터 유지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다.

◆황우석 파동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과학기술 강국 도약을 꿈꾸던 참여정부에 2005년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한 해였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2005년 5월 세계적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에 발표한 ‘맞춤형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논문’은 국민적인 환호와 지지를 이끌어냈다. 해외의 이목이 한국에 쏠리며 우리나라가 생명공학의 메카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해가 다가기도 전에 난자 불법 매매 및 논문 조작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대는 논란 속에 같은 해 12월 15일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총 26일 동안 조사를 벌인 끝에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 조사결과를 다음해 1월 10일 발표했다.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를 놓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검찰은 줄기세포의 미존재 및 관련 연구 조작 사실을 재확인했다.

검찰은 당시 ‘전 국민의 희망이 일거에 무너졌다는 점에서 과학계의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황우석 파동은 우리나라 생명공학 기술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국민에게 실망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과학기술계 역시 신뢰성 면에서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무엇보다도 타격을 입은 것은 참여정부였다. 황우석 교수를 제1호 최고과학자로 선정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했던 참여정부는 책임공방에 휩싸였으며 물의를 빚은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물러나야 했다.

과학기술계는 이를 계기로 책임 있는 연구수행을 위한 체계적인 연구진실성 검증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해졌다. 정부는 ‘연구윤리·진실성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최종 확정하고 철저한 연구관행을 진작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

◆참여정부 과기혁신체제 착근은 OK, 열매는?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2의 과학기술 입국’ 실현을 선언했다. 노 대통령의 과학예찬은 과학기술부총리체제 도입과 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으로 나타났다.

 참여정부는 2004년 10월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처로 격상하고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 국가의 과학기술혁신을 총괄하도록 하며 △과학기술부가 국가기술혁신체계(NIS)를 효율적으로 구축한다는 요지의 과학기술부 직제 개편안을 확정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과학기술부총리제 도입은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과학기술부는 범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정책을 기획하고, 국가 연구개발 사업 평가와 연구개발(R&D) 예산 조정·배분에 이르는 과정을 총괄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능을 강화하고,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해 부처 간 정책현안을 긴밀히 조율·협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개별 부처 위주의 과학기술 인력·산업·지역혁신 정책조정과 국가연구개발 사업평가, 예산배분·조정 기능을 과학기술부가 통합 관장하는 체제가 마련됐다.

과기혁신체제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과기부총리제 도입으로 2008년 정부의 R&D투자 규모 10조원 시대를 열었고,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비는 2002년 17조3251억원(GDP 2.53%)에서 2006년 27조3457억원(GDP 3.23%)으로 확대됐다. 생활과학교실(530개), 청소년과학탐구반(656개), 금요일에 과학터치운영(서울·대전·부산), 해외 R&D센터 유치(51개), 국제공동 연구지원 확대 등 과학기술의 대중화 및 국제화를 촉진했다.

 과학기술부총리 제도와 과학기술혁신본부 설립에 해외의 호평도 이어졌다. 최근 OECD는 한국 국가기술혁신체계 진단보고서(2008.1)에서 “한국의 과학기술부총리 및 과학기술혁신본부 체제는 회원국 중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각 부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과기혁신본부의 존재 이유인 예산 조정 및 배분 기능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의 논란도 불거졌다. 과학기술부가 종합 조정기능을 하면서 사업을 함께 집행하는 것을 두고 ‘관리부서가 사업을 수행하게 되면 평가는 누가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운동경기에서 선수로 뛰면서 심판까지 보는 이른바, ‘선수와 심판’ 논리도 과기부총리제 비판의 단골 메뉴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성과였다. 정부 R&D예산이 대폭 늘고, 역량이 강화됐는데도 대표적인 히트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해 과기부총리체제는 3년 내내 다른 부서의 견제를 받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돈을 쏟아부었지만 민간기업 대비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비판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참여정부의 과기혁신체제는 국내외의 지지와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부처 해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전경원기자@전자신문, kw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