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가 예전같지 않다. “모든 길은 SW로 통한다” “SW가 강해야 진짜 IT강국”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이전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지난주 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미래 주간’에서도 SW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많은 세션이 있었지만 SW는 겨우 한 개에 그쳤다. 휴대폰·자동차·전투기 등 주요 하드웨어 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위상과 거리가 멀다. 이곳에서 만난 한 SW인은 “우리 SW가 처한 현실을 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금융과 비교하면 SW의 위상은 더욱 옹색하다. 금융과 SW 모두 소득 3만달러를 여는 대표적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금융이 소득 3만달러 전위로 점차 국민적 공감을 얻어가는 데 비해 SW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대권주자들이 저마다 금융 정책을 내놓으며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SW 정책과 전문가를 찾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금융에 비해 홀대받고 있지만 SW는 여러 면에서 금융과 닮았다. 우선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그렇다. 인재가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지만 SW와 금융만큼 창조적 소수가 필요한 곳도 없다. 한 명이 천 명을 먹여 살리는 대표적 분야가 바로 SW와 금융이다.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래리 엘리슨 같은 세계적 SW거물이 창출하는 국부는 상상을 초월한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천문학적 돈이 왔다갔다 하는 금융도 마찬가지다.
대형화로 글로벌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과제도 같다. 국내에는 7000개가 넘는 SW기업이 있다. 하지만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곳은 드물다. SW의 꽃인 패키지 분야만 보더라도 세계 100위 안에 드는 기업이 하나도 없다. 안철수연구소·티맥스소프트·핸디소프트·한글과컴퓨터 같은 대표적 SW기업의 세계 순위는 300∼400위권에 불과하다.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벤처기업이 이미 100곳을 넘었지만 국내 간판 SW업체는 벌써 몇 년째 1000억 고지 앞에서 헉헉대고 있다. 국내 은행도 사정이 비슷하다. 국내 은행의 자산규모는 지난 몇 년간 100조원대로 성장했지만 국내 은행 10개를 합쳐야 겨우 UBS 자산규모와 맞먹을 정도로 글로벌은행에 비해 국내은행은 영세하다.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지금까지 두 산업은 제조업을 지원하는 후방산업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출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될 수 있다. 해외 시장 문은 높고도 높다. 선택과 집중으로 집중 공략을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다행히 BPM·CMS 같은 SW는 미국·일본에서 성과를 내며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금융도 런던이나 뉴욕 같은 국제 금융허브를 모델로 하기보다 파생상품 중심지로 성장한 몬트리올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틈새모델을 본받아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SW와 금융은 닮은 꼴이다. 2년 전 노 대통령은 “SW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며 SW강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제조업만으로 3만·4만달러 달성에 한계가 있으니 “금융이 선두에 서달라”고 주문했다.
아쉬운 것은 금융이 소득 3만달러를 열기 위해 여러 이슈를 만들어내는 데 비해 SW는 잠잠하다는 것이다. 미래사회와 SW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소득 3만달러와 SW는 무슨 관계에 있는지 SW강국 코리아는 어디를 어떻게 지향해야 하는지와 같은 거대 담론이 없다. 선단형 SW 수출이나 분리발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SW를 모르는 사람에게 SW의 중요성과 값어치를 제대로 알려줄 보다 큰 담론과 이슈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 SW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조용히 있는다면 SW는 앞으로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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