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주기적 변화는 정말 오묘하다. 그렇게나 더웠던 여름은 가고 벌써 따뜻한 이불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왔다. 대학 캠퍼스에는 예년과 같이 곳곳에 채용설명회니 취업설명회니 하는 플래카드가 나붙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사 꼭 계절에 따라 변화에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법에 따라 관습에 따라 또 시류에 따라 어느 때는 휩쓸려서 또 어느 때는 저항하면서 살아간다. 마치 우리가 5년마다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마다 나라를 잘 이끌어 보겠다고 나서는 대선 후보들 그리고 그들이 쏟아내는 수없는 공약과 구호, 당선의 환희와 낙선의 침통함. 정권인수 시의 서슬퍼럼, 정권말기의 레임덕과 초라한 퇴장. 이것이 정녕 우리가 5년마다 겪어야 할 운명이란 말인가.
역사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상황과 사건의 경험, 성공과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거쳐 발전해 왔다. 한 번의 성공에 자만하거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던 국가와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 생활터전이 IT산업이다 보니 5년 전 이맘때 그때 그 사람들이 무슨 공약을 내걸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어 여기저기를 검색해 봤다.
2002년 11월 12일 ‘盧후보 10년간 IT인력 100만명 육성’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의하면, 노무현 후보는 한국을 세계 5위권 IT산업기술국으로 이끌기 위한 10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10년간 100만명의 IT 전문인력과 이 분야 세계 최정상급 정예인력 1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며, 외국 IT 선진기업의 한국유치를 위해 원스톱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외국이 교육이나 언어 등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기반 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돼 있다. 아울러 강력한 디지털 리더십과 함께 디지털 국가경영 비전과 전략수립 능력을 갖춘 ‘디지털 대통령’이 되겠다고 전하고 있다.
다음날인 11월 13일자 ‘이회창 후보 IT 3대 강국 도약시킬 것’이라는 제하의 기사에는 세계 7위로 평가받는 우리나라 IT산업을 3위로 도약시키겠다며, IT부문에서만 향후 5년간 8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IT 관련 종사자가 200만명을 웃돌도록 하겠다고 나와 있다. IT 특성화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을 설립하고 산업체 수요를 반영한 교과과정 구성과 현장실습 교육제도를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제 5년이 흘렀다. 요즘 IT업계 사정은 5년 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다. 어쩌면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기술도 뛰어나고 제품도 우수해 국가정책적 배려가 조금만 있다면 세계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많은 벤처기업 등 중소기업이 특히 어려워하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다. 이러 사정은 대학에도 그대로 반영돼 컴퓨터 관련 학과가 비인기학과가 된 지 오래고, 취업이 되지 않아 폐과를 검토하는 지방대학도 있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5년 전 유력 대선 후보들의 공약(公約)이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지 않고 실천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미련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 후보의 위 공약들이 잘 추진됐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또 집권에 실패했더라도 차기 집권을 위해 당의 대선 공약사항을 국회 의정활동으로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공약이란 말 그 자체가 공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지난 5년간 우리가 깨달은 교훈이 아닐까.
그래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IT기업과 직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시절의 교훈을 되새기면 계절이 변하듯 IT산업이 다시 번창할 날이 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는 IT산업 육성을 국가적 어젠다로 삼고 공약을 실천하는 대통령이 나올 것으로 ‘스스로’ 믿고 싶기 때문이다.
◆김준형 <경희대학교 취업진로지원처장·교수> jhkim@kh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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