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한미숙 헤리트 사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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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있는 필자(오른쪽)

 ‘盡人事待天命’이다

 베리텍(이후 헤리트로 사명 변경)이 팔레이(Parlay)포럼 멤버로 가입하고 제품 개발에 착수한 2001년 당시에는 통신 전문가들조차도 팔레이를 날아다니는 ‘파리’로 잘못 알아들을 만큼 생소한 용어였다. 팔레이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는 팔레이 포럼에서 차세대 통신서비스 인프라를 위한 개방형 API로 정의된 국제표준이다.

 적어도 국내에서 1등을 하고 세계무대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먼저 제품 개발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금과 인력 모두 부족한 신생기업으로서, 불확실한 시장에 뛰어들어 팔레이 API 기반의 개방형 서비스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전직원이 회사에서 숙식을 하다시피 개발에 몰두한 덕에 2002년 시제품을 개발했다.

마침 국제 표준화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KT가 2002년 말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두세 번째로 차세대 개방형 서비스 플랫폼 도입을 추진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사업 분야를 포기해야 할 만큼 아주 중요한 벤치마크테스트(BMT)가 진행되었다. BMT 참여 업체는 HP와 유엔젤 그리고 베리텍이었다. 자금과 인력 면에서 베리텍은 두 회사와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13명 인력이 재산의 전부였다. 서비스 플랫폼의 특징상 초당 100만 사용자가 동시에 서비스를 이용할 때의 성능을 만족시켜야 하고, 20년 동안 2시간 이상 고장이 나면 안 되는 엄격한 안정성 요구 기준을 갖춰야 했다. 1000개 이상의 기능 시험 항목도 통과해야 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긴장감으로 전 직원들이 똘똘 뭉쳐 날밤을 새며 매달린 덕에 우리 제품만 BMT를 통과했다.

 ‘야호!’. 전직원은 환호했다. 직원들의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을 인정해 준 KT 관계자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다. 그 발판이 있었기에 국내시장 1등을 이어올 수 있었고 해외도 공략할 수 있었다.

 상용화가 본격화되면서 대전 사무실은 텅 빈 채로, 대다수 직원들이 서울로 장기 출장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본격적인 영업을 위해 회사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대전이 생활 거점인 직원들을 설득했다. 주거비용은 물론, 가족의 직장까지 포기해야 하는 등 생각보다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지만 한 명도 이탈 없이 서울행을 택해 주었다. 이렇듯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2006년 말에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팔레이 게이트웨이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독일 지멘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으로 시장 개척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 우물만 판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팔레이 하면 헤리트’라 할 정도의 경쟁력을 쌓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1등 한 것처럼 이제 막 펼쳐지는 세계시장을 한국의 작은 기업이 넘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팔레이 기반의 개방형 서비스 인프라는 통신사업자의 자원을 안전하게 외부에 개방할 수 있어 통방융합, 인터넷·통신 융합, 건설교통, u시티 등 통신 접목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를 묶어 주는 서비스 관문 역할을 한다. 국산 제품이 해외 사업자의 차세대 통신서비스 인프라로 구축된다는 것은 한국의 많은 부가서비스를 해외로 동반수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mshan@heri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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