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분리발주라는 모험이 시작됐다. 행정자치부와 정보통신부는 제2정부 통합전산센터에 들어가는 SW에 대해 분리발주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통부는 정부 및 공공기관이 IT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SW를 분리발주하는 기준이 될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IT코리아라는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취약한 우리의 SW산업을 제대로 한번 키워보자는, 정부와 SW기업들의 열망이 담겨 있는 SW 분리발주제도가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다.
SW 분리발주는 목에 걸린 가시다. SW기업들은 우리나라 SW산업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을 통합발주에서 찾는다. 통합발주는 IT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발주하고, 이를 수주한 IT서비스기업들이 각각 필요한 솔루션을 SW기업에서 구입,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SW기업들은 IT서비스기업들과 갑을관계로 묶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IT서비스 시장이 건설 하도급 시장에 비유되는 이유다.
이에 비해 IT서비스기업들은 당연히 통합발주를 원한다. 실제 이용자인 발주기관에서도 분리발주에 대한 반발은 심하다. 대형 IT서비스기업들에 턴키베이스로 프로젝트를 발주하면 모든 게 끝났던 일들을 구태여 SW별로 구분해 별도 입찰을 하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SW 분리발주 시행은 SW산업 발전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다. 통합발주의 경우 IT서비스기업을 통하지 않으면 SW기업들은 프로젝트 참여 자체가 원천봉쇄된다. 특히 IT서비스업체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돈이 되는 제품은 자체 개발로 충당하고, SW기업에는 무리하게 가격인하를 요구해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SW기업이 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분리발주는 SW기업의 숙원인 SW 제값받기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SW 분리발주가 제대로 이루어질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의 의지만으로 정착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분리발주는 조달청의 구매계약법에도 명시돼 있다. 있는데 안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발주자들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고 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번 통합전산센터의 분리발주 이후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그래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SW 분리발주를 하루빨리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발주자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제도를 만든 것만큼의 결단과 실천의지가 중요하다. 발주자들이 분리발주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함께 시행해야 한다. 분리발주 시 인사고과에 반영하거나 담당자를 전문가로 인정, 별도 전문가 수당을 지급하는 것 등의 직접적인 당근이 필요하다. 물론 발주자들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고 분리발주에 따른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SW임치제도 등 제도적 보완장치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기업참여제한제, 국산SW 우선구매제 등 그동안 참여정부가 SW산업 육성을 위해 펼쳐온 정책은 분리발주 시행으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결과는 이제 SW기업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산SW의 품질을 높여 발주자들이 안심하고 국산SW를 구입하도록 하고 과당경쟁을 자제함으로써 선진SW강국을 만들어가기 위한 체력을 다져야 한다. 정부의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SW산업이 제대로 크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SW기업들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양승욱 논설위원@전자신문, swyang@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中 반도체 설비 투자, 내년 꺾인다…韓 소부장도 영향권”
-
2
기계연, '생산성 6.5배' 늘리는 600㎜ 대면적 반도체 패키징 기술 실용화
-
3
네이버멤버십 플러스 가입자, 넷플릭스 무료로 본다
-
4
KT 28일 인사·조직개편 유력…슬림화로 AI 시장대응속도 강화
-
5
삼성전자, 27일 사장단 인사...실적부진 DS부문 쇄신 전망
-
6
'주사율 한계 돌파' 삼성D, 세계 첫 500Hz 패널 개발
-
7
K조선 새 먹거리 '美 해군 MRO'
-
8
美 캘리포니아 등 6개주, 내년부터 '전기차 판매 의무화'
-
9
한국은행 디지털화폐(CBDC) 결제 첫 공개…“앱 하나로 3초면 끝나”
-
10
상장폐지 회피 차단…한계기업 조기 퇴출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