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SW업계의 공동운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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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에 예수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온다. 씨뿌리는 자가 길가에 뿌린 씨는 새들이 먹어 버렸고 흙이 얇은 돌밭에 뿌려진 씨는 곧 싹이 나오나 뿌리가 말라버리고,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30배, 60배, 100배가 됐다는 내용으로, 동일한 씨앗이라도 뿌려진 땅에 따라 결실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산업 현장을 뛰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과 한계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과연 내가 사업을 시작한 대한민국의 벤처 토양은 어디에 해당할까’라고 자문하게 된다.

 한국의 벤처 토양은 성경에서 언급된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처럼 싹은 곧 나지만 뿌리가 깊지 못해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는 어려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얼리어답터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상품화해 승부하기 좋은 땅이다. 또 정부도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벤처가 지닌 새로운 기술이 단기간에 싹이 돋아날 수 있도록 물까지 뿌려주니 좋은 토양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우수신기술사업과 중기청, 지자체의 벤처 지원 프로그램으로 가지고 있던 기술과 아이디어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었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고객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산업별로 다양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내처럼 시장이 좁으면서 경쟁 또한 치열한 시장 환경은 수많은 벤처업체가 풍성한 열매를 맺기에는 너무 척박한 토양이다. 논농사를 지을 때 못자리에서 자라난 촘촘한 모를 넓은 논으로 모내기해 풍성한 수확을 얻듯이 국내에서 자란 벤처업체도 해외시장으로 옮겨가야만이 태생적인 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 시장에서 기반을 잡은 선두 SW 벤처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시점이다. 몇 년 전 해외전시회에 나갔었는데 당시 우리는 국내에서 유명한 A사의 백신을 내장한 제품을 출시했다. 해외 바이어와 상담하는데 바이어 측에서 내장돼 있는 제품 인지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미국 유명 백신 중 하나를 탑재해 달라는 요구 때문에 계약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옆 부스에서 하드웨어 제품을 출시한 국내 업체는 삼성·LG에 납품한다는 설명에 곧바로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삼성·LG 등 대기업이 세계시장을 개척한 후광 효과를 누리는 HW 업체와 세계적인 SW가 없는 국내 SW 업계의 명암이 대비되는 경험이었다. 당시 배운 교훈은 한 제품, 한 회사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해외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길은 국내 SW기업의 해외 인지도, 국가 브랜드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벤처 씨앗에 물을 주는 사업인 우수신기술 발굴 지원 사업은 중단 없이 계속돼야 한다. 그마저도 있던 벤처 지원이 줄어든다면 한국의 많은 벤처 기업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의 신세로 새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국내 대표급으로 인정받는 SW 기업은 국내에서의 성공을 해외로 이어가는 데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쉽지 않은 여정일 테지만 ‘SW 강국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나간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끝없이 도전한다면 70·80년대에 선배들이 이룩했던 것처럼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SW 기업은 같은 토양에서 자란 공동 운명체다. 또 우수한 제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 SW업체가 선진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기도 힘든 것이 대한민국 SW업계의 위상이다. 공동 운명체의 현실을 이해하고, 비록 국내 시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하더라도 해외 사업 부문에서는 합심하고 협력해 수출의 물꼬를 터야만 한다. 반드시 내 회사의 깃발이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좀 더 경험과 여력이 있고 준비된 회사를 뒤에서 밀어주자. 하나의 성공은 비단 해당 기업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고 나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SW 벤처 기업에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며, 세계 속에 ‘SW강국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동범 지니네트웍스 대표 dblee@geninetwor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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