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감.’
여성벤처협회 차기 회장에 당선된 배희숙 이나루티앤티 사장(50)에게 이 세글자 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그의 애칭 그리고 애칭에 대한 그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와 닿는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벤처업계에서 그를 부르는 애칭은 다름 아닌 ‘항공모함’이다. 지천명(地天命)의 나이라는 50줄에 들어선 여성에게 항공모함이라니. 그러나 그의 대답은 걸작이다.
“마음이 넓고, 생각이 넓어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다. 도대체 이같은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주저하지를 않는다.
“저는 저 자신을 좋아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떻게 행동을 하든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심지어 보이지 않는 매력까지 저 자신을 좋아한답니다.”
배희숙 회장 당선자는 지난 99년 말 인터넷 교육업체인 이나루닷컴을 창업했다. 그가 말한 창업배경이다.
“97·98년 벤처 붐이 한창일 때 몇 개 업체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벤처의 역동성에 푹 빠져 제가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묻지마 투자와 묻지마 창업이 빈번하던 벤처 버블기 때의 창업. 하지만, 지금까지 끄떡없다. 아니 오히려 회사는 더욱 커졌고 탄탄해졌다. 배경을 묻자, 그는 ‘성실’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남 부럽지 않게 성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곧 준비를 한다는 말과 통한다고 봅니다. 제가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너는 언제 그런 준비를 했느냐’ 입니다. 항상 앞을 내다보며 성실히 준비한 결과입니다.”
그의 하루 시작을 보면 성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배 당선자는 가정주부뿐만 아니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한국지능형교통시스템(ITS)학회 부회장, 과학기술부 여성위원, 건설교통부 ITS 전문위원, 서울시 디지털미디어시티 전문위원 등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다. 외부 저녁행사가 비일비재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가 매일 아침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기상해, 가족의 아침식사를 직접 챙긴단다. 수면시간은 5시간 안팎 정도.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죠. 대신 아침식사는 꼭 성의껏 챙기고 있습니다.”
이나루티앤티는 배 당선자가 지난 2003년 설립한 ITS전문업체. 바이너리 CDMA와 지그비를 이용한 무선통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개발인력만도 70명이 넘는 탄탄한 조직이 있는 이 회사는 배 당선자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 그동안 홍보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주머니 속 송곳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삐져 나온다”며 “회사의 좋은 점을 굳이 나서서 알리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알리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어떤 대기업에서는 우리회사 개발인력에 대해 ‘드림팀’이라고 부른다”며 기술력에 대해서는 결코 어느 회사에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배 당선자가 업계 단체장을 맡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회장이라는 정식 직함은 내년 초 예정된 총회에서 추인을 받은 뒤부터 쓸수 있다. 5대 회장에 취임하면 무엇을 할지 물었다.
“1대부터 4대 회장단까지 여성벤처기업인들을 위한 여러 고민들이 중첩돼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이뤄졌습니다. 그동안 1∼5단계 가운데 2단계까지 진행됐다면 저는 5단계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새롭게 벌리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떠오른 이슈에 대해 말끔히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협회장으로서 회원사 대변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특히 여기에 한국 벤처기업들의 성장의 문제점을 결부시켜 지적했다.
“벤처기업의 생명은 바로 샘 솟듯 솟아나는 ‘신기술’ 입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 신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벤처기업들이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자꾸 밀리고 있습니다. 시장을 정부가 리드할 수 있도록 바꿔나가겠습니다.”
그는 아울러 “협회가 너무 외부 조명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이것에 너무 의식하다 보니 내부 결속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며 “내부 회원사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충실하겠다”고 덧붙였다. 여성 벤처기업인들에 대한 자랑도 아끼지 않았다.
“선거를 치르면서 여성 CEO 개개인 모두 탁월한 역량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이들이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강점인 ‘인맥관리 능력’이 한 몫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희숙회장 당선자의 말에 ‘노’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예스’라고 말하게 유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배희숙 회장당선자가 여성 벤처인들을 어떻게 똘똘 뭉쳐, 한국 여성의 매서움을 만방에 떨치게 할지 벌써 기대된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