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업계 "기술은 공유하고 마케팅은 합하라"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컴퓨팅 플랫폼 협업 사례

 ‘인수합병(M&A)보다는 기술 공유가 대세다.’ 세계 IT업계에 M&A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지만, 컴퓨팅 하드웨어 업계만은 예외다. 지난 2002년 HP의 컴팩 인수 이후 테이프 및 스위치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하드웨어 업계는 대형 M&A의 무풍지대가 됐다. 대신 다국적 하드웨어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꺼내든 카드는 ‘협업’. 자체 개발센터 간은 물론이고 경쟁 업체 개발센터와도 손잡고 제품 공동 제작,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공동 플랫폼 형태의 제품이 쏟아질 예정이어서 국내 하드웨어 컴퓨팅 업계 지형의 적지 않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공동 플랫폼 제품 쏟아진다=한국썬과 한국후지쯔는 오는 11월 후지쯔와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본사가 공동 개발한 유닉스 신형 서버 ‘APL’을 출시한다. 프로세서, 칩세트, 보드 등 주요 부문을 공동 개발하고 메모리, 섀시 등 각종 주변 부품 조달과 시스템 패키징 작업은 선과 후지쯔의 공장에서 따로 진행된다.

 유니시스는 하이엔드 엔터프라이즈 서버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NEC와 손잡았다. 두 회사는 엔터프라이즈 공동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2008년께 제품을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IBM은 지난해 스토리지업체 네트워크어플라이언스(넷앱)와 30년간 업무 협력이라는 광범위한 기술 제휴를 체결했다. IBM은 넷앱 전 라인업을 IBM 라인업으로 선보이는 한편 장기적으로 공동 개발한 제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이 같은 경향은 회사 내부 R&D 조직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같은 회사라도 제품별 R&D센터 사이에는 ‘철옹성’ 같은 벽이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최근에는 센터 간 기술 교류를 통해 탄생한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IBM 유닉스 서버(P시리즈)와 통합서버(i시리즈)는 플랫폼을 공유한 대표적인 제품. 두 제품은 지난해부터 같은 프로세서(파워칩)를 탑재하고 같은 하이퍼바이저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유니시스가 준비하는 차세대 아키텍처 맥락도 비슷하다. 현재 유니시스 메인프레임은 특수 칩에 자체 OS를 탑재한 형태지만 앞으로는 인텔 프로세서에 메인프레임 OS와 리눅스, 윈도 서버를 동시에 운영하는 형태의 엔터프라이즈 서버를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유니시스는 이 아키텍처를 탑재한 ‘ES7000/원’이라는 제품을 연내 선보인다. 인텔의 서버용 프로세서가 멀티코어로 진화하면서 제온 시리즈와 아이테니엄2 시리즈가 장기적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차별화 포인트도 달라져=이 같은 움직임은 무엇보다 몸체가 무겁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하드웨어 업체 간 M&A는 부담스럽지만 개발 협력을 통해 원가 절감, 출혈경쟁 방지, 공동 마케팅 등 다양한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이나 아웃소싱과 달리 상호 기술력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협업하는 경우, 프로세서 등 핵심 부품은 공유하기 때문에 각사가 따로 개발하는 부가기능에서 경쟁력을 찾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칩세트나 시스템 디자인을 강조하는가 하면 다중 운용체계(OS) 지원, 시스템 관리 소프트웨어, 지원 및 영업 인력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APL의 경우 한국후지쯔는 이중화한 시스템 디자인과 일본 공장 직배송을, 한국썬은 OS인 솔라리스에 관한 기술 노하우와 한국 지사의 서비스 체계를 강점으로 꼽는다.

 IBM 본사에서 근무하는 정예송 IT 스페셜리스트는 “같은 제품이라도 기능이 수만 가지이기 때문에 어떤 기능을 강조해 어떤 소프트웨어와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제품이 된다”면서 “이 점을 간파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마케팅 전쟁 예고=마케팅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기술 공유를 통해 R&D 비용을 줄인 만큼 좀더 과감한 가격 정책과 영업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공동 제품이기 때문에 공동 세미나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천부영 한국썬 부사장은 “컴퓨팅 업체들이 공동 개발 및 제작에 나서는 것은 비용절감을 통해 차세대 R&D 투자에 나서기 위해서”라며 “공동 개발 제품은 개발에 든 비용을 빨리 회수할 수 있어 과감한 마케팅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