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간 기업결합을 갑자기 허용하지 않을 뜻을 내비친 것은 실로 유감이다. 독과점 폐해를 방지하고 공정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공정위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다만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괜히 평지풍파만 일으킬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HCN과 대구중앙케이블TV북부방송, CJ케이블넷과 모두방송 등 2건의 기업결합 심사를 내달 전원회의에 부치기로 하면서 “불허결정에 따른 대안도 검토중”이라고 엊그제 밝혔다. 공정위가 그간 20건의 SO 간 기업결합을 무난히 승인해 준 경험에 비춰 볼 때 이런 뜻은 이례적이지 않을 수 없다. 공정위는 더욱이 “지난달 국내 케이블TV 시장 경제분석결과에서 독점의 폐해를 입증했다”고 말해 사실상 이번 두 건의 기업결합을 허락해 주지 않을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이상한 것은 이번 두 건의 기업결합이 과거 20건에 달했던 기업결합과 별다른 점이 없는데도 공정위가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는가 하는 점이다. 공정위의 자세돌변은 권오승 위원장의 엊그제 발언에서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권 위원장은 “앞으로 재벌정책은 소유·지배구조 측면보다는 개별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공정위가 지배구조·출자총액제한 등으로 재벌 자체를 규제하는 데에서 벗어나 실제 시장에서 일어나는 독과점을 집중 감시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정치논리가 아닌 시장논리에 입각해 독과점 규제와 경쟁촉진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는 공정위의 기조변화는 마땅하며 적극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개별 시장의 독과점 감시와 규제’의 불똥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SO 간 기업결합 불허로 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케이블TV시장은 무려 77개 권역으로 쪼개져 있고 권역마다 사업자가 다르다. 이미 방송법에서도 전국 77개 권역 중 15개 이상 권역을 한 사업자가 독점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공정위 못지않게 방송위원회가 이 시장의 독과점을 규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미 방송시장에는 케이블TV는 물론이고 전국지상파·지역지상파와 위성방송·위성DMB·지상파DMB 등이 난립하고 있다. 조만간 IPTV도 선보일 예정이다. 어느 권역에서든 케이블TV 사업자끼리만 경쟁하는 ‘별난 경쟁구조’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위도 이런 점을 인정했기에 그간 SO 간 기업결합을 승인해 왔다.
일관성과 원칙이 없는 공정위의 태도 변화는 신임 위원장의 방침에 무조건 따르려는 관료주의도 한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는 기술 진보와 그로 인해 다매체 시대로 변하고 있는 시장상황을 통찰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여 씁쓸하다. 권 위원장은 독과점 규제를 강조하면서 “금융·통신 등 일부 산업이 이중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어디까지를 관련시장으로 볼 것인지가 시장지배적사업자를 판단하는 기준인데 이 부분은 공정위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독과점 규제는 사업자 간 공정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인만큼 자칫 이중규제로 사업자와 소비자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그런만큼 공정위는 최소한 시대를 따라가는, 때로는 시대를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관련시장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를 공정위 고유의 권한으로만 고집하지 말고 기술과 시장, 시대 변화에 함께 호흡하는 열린 자세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공정위는 시대흐름을 반영하지 않은 채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독과점 잣대를 갖다 댄다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 한다는 찬사가 밥그릇 싸움을 위한 이중규제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난으로 바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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