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금동화 KIST 신임 원장

Photo Image
지난 1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20대 원장으로 취임한 금동화 원장이 연구소 앞뜰에 만발한 벚꽃을 바라보며 KIST의 새로운 꿈들을 밝히고 있다.

1960년대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농촌에서 농사 밑천인 소를 팔아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던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못 먹고, 못 배운 한을 후대로 물려주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부모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부모들의 희생으로 70, 80년대 우리나라가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크게 공헌한 자식세대들이 바로 지금의 50, 60대들이다.

 그 시절 충북 옥천 산골에서 자란 한 소년도 출세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게 소원이었다. 일류고등학교에 진학한 소년은 형제들과 사촌들이 법대를 준비할 때 사관학교 입시반을 택했다. 군인이 되고 싶었기 보다는 누구나 다 하려는 일에는 취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의 반대로 그는 1969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와 당시 국가 최고 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 들어갔다.

 그가 바로 지난 1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20대 원장으로 취임한 금동화 원장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고자 했던’ 천성이 오늘날 그를 과학자로 만든 게 아니었을까.

 “20년 먹은 나라 녹을 이제는 국가에 돌려줄 때”= 금동화 원장은 KIST에서 20년 간 연구로 한 우물을 판 천생 연구원이다. 국내외 학술지에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재료공학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았고 국무총리상(1997), 공군참모총장 표창(1998), 서정상(2002) 등 연구업적으로 정부 표창도 받았다. 대학으로부터 교수직 제의도 숱하게 받았지만 ‘연구가 좋아서’ 이 길을 고집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연구자가 아닌 연구소 원장을 선택했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국가 예산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맘껏 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20년간 나라 녹을 먹어왔으니 이제 나도 국가에 뭔가 돌려줄 때라고 생각했지요.”

◇KIST가 걸어갈 길= 정부출연연구소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연구기관이다. 그러면 당연히 국가가 해결할 문제를 연구해야 된다는 게 금 원장의 지론이다.

 1995년 일본 도쿄에서 옴진리교 가스테러가 발생했을 때 금 원장은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친하게 지낸 미 국립보건연구소(NIH)의 한국인 과학자가 들려 준 얘기가 있다. “출근 길 지하철에서 한 흑인이 일본처럼 미국에서 지하철 가스테러가 나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하자 그 옆에 있던 친구가 ‘걱정마라. 우리는 NIH가 있지 않느냐’고 하더랍니다. 정부출연연이라면 국민에게 그 정도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부러움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금 원장은 정부연구소가 해야할 연구과제로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문제와 석탄연소효율을 높이는 문제를 꼽았다.

 “화력발전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기 생산량의 절반이 화력발전소에서 나옵니다. 일본이나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자국의 석탄 연소효율 높이는 연구과제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이런 연구가 없습니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대사가 되고 있습니다. 화력발전의 효율을 높이고 공해를 줄이는 일은 국가적 의제이고 온도나 압력을 조절해 효율을 높이는 기술적인 연구는 정부출연연이 앞장서 해야겠지요. KIST는 여러 연구분야가 있는 종합연구소이기 때문에 그런 국가 과제를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를 설득할 생각입니다.”

◇“대학 교수들이 오고싶어 하는 연구소 만드는 게 꿈”= 금 원장은 스스로 ‘행복한 연구자’였다고 말한다. 연구에 뜻이 있다면 KIST만큼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 국내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러나 IMF를 겪으면서 연구원 정년이 61세로 감축됐고 보수도 줄어들자 연구소에서 대학으로 이탈하는 연구인력이 급격히 늘었다. “참 가슴아픈 현실”이라고 금 원장은 안타까워했다.

 “선진국에서는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기업이고 그다음이 연구소, 대학 순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정반대죠.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에 연구인력이 몰리는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하죠.”

 금 원장은 “임기 중에 정년과 임금 등 연구원 처우를 현실화해 대학 교수들이 오고 싶어 하는 연구소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4월 햇살이 연구소 앞뜰에 만발한 벚꽃 위에서 부서지는 아름다운 봄날 오후, 금 원장은 KIST의 새 봄을 꿈꾸고 있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