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톱이 대중에게 알려진 때가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였습니다. 부산 일부지역에서 일본 위성방송 수신 셋톱박스를 설치해 몰래 일본 TV를 보는 게 유행이었으니까요.”
신욱순 홈캐스트 사장은 셋톱박스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초창기 ‘셋톱박스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대륭·기륭’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이제는 추억이 돼버린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셋톱박스 역사를 꼼꼼히 기억한다. 그가 셋톱박스와 처음으로 만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물산 출신이다.
“삼성에서 해외영업을 하다가 셋톱박스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시장이었던 거죠. 기륭을 설립할 때 삼성물산이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삼성물산 시절 해외에서 셋톱박스 시장을 처음 접했다. 그게 발단이 돼 기륭전자 설립과정에 관여했고, 그러다 보니 셋톱박스 회사 CEO가 됐다.
“당시 한국은 정보통신 부문 후진국이었습니다. 후진국에서 온 샐러리맨이 셋톱박스를 판다면 모두 비웃었습니다.”
서러움을 많이 겪었다. 한국은 아시아의 농업국가로 인식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프랑크푸르트 지사 차장 신욱순이 독일 바이어에게서 ‘대한민국=농업국가’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제품 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무렵 삼성물산은 셋톱박스 사업을 정리했다. 하지만 그는 2003년 10월 홈캐스트 CEO를 맡으면서 다시 셋톱박스와 질긴 인연을 맺었다.
“셋톱박스는 흐름을 읽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통신사업자의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됩니다.”
그는 당분간 IP셋톱박스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등지의 대형 통신사업자가 이미 방송영역 참여를 시작했으며, 중동 지역에서 아랍에미리트 등이 사업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셋톱박스 발전 과정에서 증명된 ‘유럽 다음 중동’이라는 공식이 다시 맞아들어가는 순간이다.
신 사장은 우리나라 통·방 융합을 둘러싼 정치적 다툼이 못마땅하다. 세계 선진국은 IPTV에 개방적인데 유독 우리나라만 각종 법률 문제로 논쟁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적 우위는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해결할 문제라고 믿고 있다.
그는 올해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미국은 셋톱박스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의 마케팅 대상이다. 홈캐스트는 지난해 매출 1303억원에 82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업계 2위 성적이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사진=윤성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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