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코맥스 변봉덕 회장(8)

Photo Image

(8) 변해야 산다.

 기업 경영인에게 당근인 동시에 채찍이 되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영원한 1등은 없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1등은 1등대로, 2등은 2등 나름의 끊임없는 연구 노력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는 정보통신 분야에서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입증하는 자료중 하나가 OECD에서 혁신력 평가지표로 발표한 ‘오슬로 매뉴얼’이다. 이에 따르면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 매출액 대비 4% 이상을 유지해야 이른바 혁신선도기업의 자격이 부여된다.

 현재 코맥스는 연 매출액의 10%를 제품의 개발 및 연구비로 재투자하고 있다. 1994년 부설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전체 사원의 20%가 연구원이다. 그 결과 연간 150만대의 제품을 생산하고 매년 40∼60개의 신제품을 꾸준히 발표하게 됐다. 지속적 R&D와 투자만이 기업 생존의 원동력이다. 우수한 성능과 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가졌다면 제 아무리 높은 수출 진입장벽이라도 무엇이 겁나겠는가.

 우리가 시장 환경에 굴하지 않고 R&D에 적극 매진할 수 있었던 데엔 연간 10여차례 이상 해외 시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온 영향 또한 크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우리 기술의 창의성과 정보력의 부재는 극복해야 할 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때문에 나는 직접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기술 인력을 해외 보내 관련 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인터폰으로 출발하여 1993년 9월 세계 최초로 비디오 도어폰 UL 및 TUV 규격 획득을 비롯해 세계 유명 규격 340여개를 획득할 수 있었고 나아가 월패드, 웹패드 기기 및 홈서버 등 최근 정보통신산업의 총아로 대두된 홈네트워크 부문을 독자 개발,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차별화된 고품격 디자인 역시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코맥스는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명지대 디자인팀과의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인 개발을 추진해 왔다. 나는 지금도 매주 열리는 디자인 회의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코맥스의 빼놓을 수 없는 경영 이념중 하나는 우수한 인재 양성이다. 업계에선 ‘공부하는 회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사내외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일례로 승진을 하려면 사원급은 연간 144시간, 간부급은 연간 168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또한 직급을 막론하고 해외 출장 기회를 많이 부여해서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80년대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건설업체의 간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안하무인격으로 큰소리를 치는 사원을 목격했다. 아무리 코맥스가 업계를 독점하다시피 우위를 선점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지만 건설업체라는 고객을 상대로 긴장감이나 열정대신 오만과 자만심으로 일관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날이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나는 다시 한번 사업초창기 때 가졌던 초심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즈음 마침 군소 경쟁업체로부터 인수 요청을 들어왔다. 나는 인수 대신 그 업체에 기술 이전은 물론 용기를 북돋아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물은 흘러야 한다. 한 곳에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창의적이고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 기업은 결코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된다. 아니, 변해야 살 수 있다. bbduk@commax.co.kr

 사진설명:1969년 4월 중앙전자공업사로 시작한 코맥스는 30여년간 국내외 통신발달을 선도해 왔다. 국내 최초로 도어폰을 수출하기 시작한 코맥스는 미주, 유럽, 남미 등 세계 100여개국에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성남 중원구 코맥스 본사 사옥.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