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평양에서 남북경협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희망의 씨앗을 보고 왔다. 지난 10월 1일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과 북의 민간기업인 170여명이 함께 ‘투자’를 논의하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한국산업단지공단과 북한의 경협창구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공동 주관으로 개최한 남북투자설명회는 작은 성과였지만 소중한 상생의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이 투자설명회는 김정태 안동대마방직 회장의 숨은 노력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 남북이 50대 50으로 합작한 최초의 합영기업 1호인 평양대마방직 창업을 기념하는, 이를테면 부대행사였다. 5년여 동안 북한을 설득한 끝에 쓰임새가 무궁무진한 ‘신비의 천연섬유’인 대마(大麻)를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민족섬유’로 인식하도록 하고, 오는 2007년까지 북녘 곳곳에 6000만평 규모의 대마농장 500여개를 조성하기로 했다. 평양대마방직은 남북 경제협력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대표적인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합작품을 탄생시킨 김 회장은 대북 협상에 5년여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본인에게 개성공단 이외 지역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산업단지 기업인들과 북한 기업인들 간 허심탄회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보자고 제안해 이번 행사가 열린 것이다.
대동강 한복판에 47층 높이로 우뚝 선 양각도호텔 국제회의장에서 남측 기업들을 상대로 한 북한의 첫 투자설명회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부회장과 산업·무역 관련 5개 총회사 사장 등 30여명의 간부가 참석해 시종 진지한 자세로 투자상담에 임해 북한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남북 기업인들의 첫 만남이라 긴장과 어색한 분위기로 시작됐지만 남측 기업인들의 다양한 투자제안과 북측의 진솔한 설명이 이어지면서 서로 뿌듯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희망의 싹이 보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서로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시종 ‘겸손’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이해하게 되고 점차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 됐다. 평양대마방직에서 보듯이 남한의 자본·경영·기술 그리고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자원이 합쳐진다면 남과 북 모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분단 반세기 동안의 불신과 반목의 늪에서 벗어나 남북 간 상생 발전으로 민족이 함께 번영하고 장차 있을 통일비용도 줄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뜻깊고 중요한 일인가.
이번 평양 설명회는 무엇보다도 분단 후 처음으로 민간 차원에서 남북 기업인들이 만나 인식의 벽을 허무는 첫 번째 자리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며칠 후 미국·일본 등 외국 언론에서 개성공단과 더불어 남북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는 새 출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크게 보도했다. 분단 이후 53년 만에 갑작스럽게 이뤄진 평양 설명회였지만 이미 북측은 남측 기업인들을 당면한 경제문제를 타개할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남북경협은 경제적 측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상흔을 치유하며 남과 북이 화합하는 신뢰 구축의 주춧돌이 될 수 있기에 개성지역에 머물러 있는 남북경협의 무대는 확대되어야 한다. 남쪽에서 제2, 제3의 ‘평양대마방직’이 평양 등지에 속속 진출할 때 비로소 남북경협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cdkim@e-clus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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