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펀드 실종 위기

게임 벤처 및 프로젝트에 자양분을 제공해온 게임 전문펀드의 맥이 끊길 위기에 몰려있다. 지난 2001년 12월 한솔창투(100억)와 CJ창투(100억)를 마지막으로 추가 펀드 결성이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이 마저도 해산일(내년 12월)이 다가오면서 사실상 투자가 중단된 상태다.

게임이 디지털콘텐츠 산업의 총아이자 차세대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자본 시장에서 만큼은 심각한 딜레머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게임보다 산업규모가 고작 5분의 1에 불과한 영화의 경우 전문펀드 규모가 5배에 달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캐주얼 게임을 개발중인 A사의 K모 사장은 요즘 본격적인 마케팅 자금 조달을 위해 투자 기관을 전전하고 있다. 벤처펀드 재원이 대폭 확충되면서 민·관 매칭 펀드 조성이 붐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에 들뜬 마음을 안고 창투사를 찾았으나, 투자 대상 업종에 게임이 포함되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게임만 투자한다는 게임펀드 운용사를 노크해보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않다. 투자할 여력은 있지만, 조합 만기가 1년여 밖에 남지 않아 투자보다는 ‘회수’에 더 관심이 많다. 더욱이 A사와 같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개발사는 아예 관심 밖이다. K사장은 “자금이 많은데 투자유치가 안되니까,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에 기분이 더 안좋다”고 볼멘소리다.

주가가 천정 부지로 치솟고 신규 벤처펀드 결성이 봇물터지듯 이어지면서 요즘 벤처업계는 4∼5년전의 벤 처붐 절정기를 연상케 한다. 다른점이 있다면, 자본의 양극화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돼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업종이 많다는 사실이다. 자본은 넘쳐나는데 투자는 특정 분야로 쏠리고 있다는 얘기. 게임은 특히 그렇다.

성장율이 높은 유망산업임에도 불구, 시장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데다가 상장(IPO)이 어렵다는 이유로 벤처캐피털로부터 주목받지 못한다. 이에따라 지분투자나 CB(전환사채) 대신 영화·음반처럼 ‘프로젝트 투자’(PF)가 일반화됐지만, 이 마저도 성공이 검증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게임 벤처들에겐 그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 ‘게임펀드’ 맥 끊기나

90년대말부터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게임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게임벤처에 대한 투자를 주도해온 것이 게임 전문 펀드, 즉 게임펀드다. 이른바 ‘묻지마식’ 투자가 횡행하던 벤처붐 절정기에야 많은 벤처캐피털이 경쟁적으로 게임 분야애 투자했지만, 2000년말 문화부의 지원속에 출범한 게임펀드가 전반적으로 일관되게 게임 투자를 리드해왔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게임펀드는 한솔창투가 2000년 12월 150억원 규모로 결성한 1호 펀드(2005년 5월해산)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2001년말 CJ창투(당시 드림디스커버리)와 한솔창투가 각각 100억원 규모로 결성한 2, 3호 등 3개가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그 이후엔 추가 펀드 결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여기에 올 상반기에 한솔 1호 조합이 만기일을 6개월여 남기고 조기 해산해 지금은 단 2개 펀드만 남아있는 상태다. 투자기업도 30개 남짓에 불과하다. 그나마 만기일이 얼마남지 않아 오래전부터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게임펀드 결성의 ‘젖줄’ 역할을 담당했던 문화부 산하 문화산업진흥금(문산기금)이 폐지되고, 재원이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모태펀드(Fund Of Fund)로 넘어가면서 게임펀드 결성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실제 지난 7월 일부 창투사들과 게임업체들이 대형 게임펀드 결성을 추진하다 다른 펀드에 밀려 중도포기한 사례가 있다. 한미열린기술투자의 경우 최근 50억원대 게임펀드를 만들었지만, 이는 인큐베이팅이란 특수 펀드로 지원을 받은 케이스다. K창투사의 한 관계자는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부와 달리 중기청은 모든 산업을 포괄하기 때문에 게임펀드를 만들기 더욱 어려워졌다”며 “이러다 게임펀드의 맥이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 전문펀드 왜 필요한가

“게임이 성장 산업이고, 유망업종이란 사실 만큼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시장 예측 가능성이 낮고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특히 정상적인 게임 IPO마저 2년 이상 맥을 잇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가 맘놓고 투자하겠습니까?” 벤처 투자경력 7년차의 벤처캐피털리스트 L씨의 얘기다. 그는 “게임펀드라면 몰라도 일반 펀드 운용자 입장에서 보면 투자 리스크가 작고 (자본)시장에서 이해도가 높은 IT분야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벤처투자가 뚜렷하게 살아나고 있음에도 벤처캐피털의 게임쪽 투자가 지지부진한 이유를 함축하는 얘기이다. 이는 또 게임 전문펀드가 하루빨리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 펀드가 ‘리딩 캐피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더욱이 게임산업은 사실 투자조합의 투자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업종이란 지적도 많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은 “한솔 1호조합의 경우 연평균 수익율이 40%를 넘는 것으로 안다. 더욱이 게임은 지분투자는 물론 PF 등 다양한 투자방식이 있어 게임펀드만 활성화되면 자본시장이 금방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소 개발사에 대한 투자의 물꼬를 돌려 결국 게임산업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게임펀드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네오위즈·CJ인터넷 등 최근 게임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대형 퍼블리셔와 게임펀드는 투자 단계가 다르다는 것. 즉, 퍼블리셔의 경우 게임이 서비스 단계에 달할 때 주로 투자한다는 점에서 개발 초·중반에 투자가 가능한 게임펀드와는 역할이 다르다는 얘기. 전문가들은 “게임산업이 더욱 발전하려면, 시드 단계에 투자하는 엔젤과 게임펀드 등 벤처캐피털, 퍼블리셔 등 산업자본이 고루 제 몫을 다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 이젠 정부가 나서야할 때

게임 업계가 ‘전문펀드 결성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게임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게임산업은 국제 경쟁력이 매우 높고 성장성이 뛰어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이미 정부가 공인한 분야다.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분야는 세계 시장을 리드하는 수준이다. 연간 수출 규모가 4억달러를 웃돌며 연평균 산업 성장률이 30%를 넘을 정도로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기여도가 높다. 즉, 게임산업을 국가적으로 유망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자본시장의 선순환을 통한 업계의 균형 발전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의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산업에 대해선 펀드 결성 지원 등 보다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신창투 최지현팀장은 “가령 정부(모태펀드) 펀드 출자금이 20∼30%인 것을 게임 등 경쟁력 있는 분야의 경우 50% 내외로 확대한다면, 게임펀드 결성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엔씨소프트·웹젠·그라비티·네오위즈·NHN·CJ인터넷 등 성공한 게임업체들의 산업자본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퍼블리싱 투자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게임펀드와 같은 간접 투자 확대로 후진을 양성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벤처비즈니스가 우리 경제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는데 많은 IT 전문 펀드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전제하며, “게임 역시 보다 안정적인 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선 전문 펀드의 활성화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강조한다.

 <게임펀드 현황>

 구분=펀드운용=결성일=규모=투자금액(업체수)

 제1호=한솔창투=2000년12월=150억=90.7억(11)

 제2호=CJ창투=2001년12월=100억=87.5억(13)

 제3호=한솔창투=2001년12월=100억=68억(9)

 합계=246.2억(33)

 

 <게임산업 수출현황>

 구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E)) 2006년(E)

수출액 1.41 1.73 3.88 4.85 5.82

수입액 1.61 1.66 2.05 2.36 2.59

 (자료: 게임산업개발원)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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