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카트리나의 망령

‘이 나라로 이민 오는 사람의 수는 차순위국인 독일의 6배에 가깝다. 한해 영화 제작편수는 인도가 더 많지만 영화와 TV프로그램 수출에서는 인도를 압도한다. 외국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전세계 유학생 160만명 중 28%가 이 나라 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고 차순위 국가 영국의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2002년 현재 미국교육기관에서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외국인 학자는 8만6000명에 이른다. 세계 최대의 도서출판국이자 음악 관련 제품 판매에선 차순위국인 일본의 2배를 넘는다. 인터넷 웹사이트 호스트 수는 일본의 13배 이상이다. 역대노벨상의 물리화학경제 분야 수상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문학상은 2위를 기록하며 프랑스를 바짝 뒤쫓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가 조지프 S 나이가 그의 저서 ‘소프트파워’에서 조목조목 밝힌 세계 최강국 미국의 모습이다. 그는 1990년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당시의 일반적 인식을 반박하기 위해 소프트파워라는 말을 만들어 냈고 미국의 힘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 외에 소프트파워에도 있음을 설파했다.

 그 미국의 이미지가 이번 ‘카트리나’를 계기로 여지없이 무너진 것 같다.

 먼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화석자원 사용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욱 커졌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아프다. 글로벌 환경에 무책임한 부시정부의 모습은 이산화탄소 사용규모 축소를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면서 이미 드러났다.

 또 인명은 물론이고 40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상의 손실은 그렇다고 쳐도 뉴욕과 함께 미국, 아니 세계 양대 재즈문화의 원천인 뉴 올리언스의 복구에 그처럼 늑장대응을 할 수 있는가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소프트파워의 원천인 ‘다양성을 존중하는 국가 미국’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날려보낸 사건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다시 조지프 S 나이의 말로 돌아가 보자.

 ‘파워는 날씨와 같다. 모두가 날씨(의존)를 공통의 화제로 삼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파워는 또 사랑과 같아서 체험하기는 쉬워도 이를 명백하게 보여주거나 계량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카트리나로 인해 소프트파워의 한 부분이 뜯겨 나가면서 지구촌 지도국가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고 말았다.

 경제과학부·이재구부장@전자신문,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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